현대차그룹과 삼성SDI의 전기차용 배터리 협력이 가속하고 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 전기차에는 주로 LG에너지솔루션, SK온의 파우치형 배터리가 탑재됐으나, 올해부터 삼성SDI 각형 배터리가 탑재되기 시작했다.
이는 현대차와 삼성SDI가 지난 2023년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3년 만에 나온 성과다. 이에 앞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배터리 관련 회동을 기준으로 하면 6년 만에 결과가 나왔다.
20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9일(현지 시각) 열린 'G90 월드 프리미어'에 맞춰 공개한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90에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됐다.
GV90에 탑재된 배터리 용량은 123.5kWh(킬로와트시)로 현대차그룹 전기차 중 가장 크다.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는 GV90 스탠다드(7인승) 기준, 500km(현대차 연구소 측정 기준)다. 급속 충전을 하면 22분 만에 배터리 용량을 10%에서 80%까지 높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삼성SDI 배터리를 채택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삼성SDI 배터리는 올해 4월 출시된 기아의 소형 전기 SUV 'EV2'에 처음 적용됐다. 또한 최근 튀르키예 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한 현대차 소형 전기 SUV '아이오닉3'에도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됐다.
GV90에 삼성SDI 배터리에 탑재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앞서 삼성SDI가 적용된 EV2와 아이오닉3는 유럽에만 출시되는 전략 차종이다. 이와 달리 GV90은 제네시스가 내놓는 야심작으로 국산 전기차 중 최고가 모델이 될 예정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주력으로 생산하던 각형 배터리가 외부 충격에 강하다는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각형 배터리는 납작한 상자 모양의 배터리로 알루미늄 캔으로 둘러싸여 있어 파우치형 배터리보다 외부 충격에 강한 편이다.
배터리 업계에선 정 회장과 이 회장의 6년 전 회동이 현대차그룹과 삼성SDI의 배터리 협력 물꼬를 튼 계기로 보고 있다. 지난 2020년 5월 정 회장은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이 회장과 만났다. 이어 그해 7월 이 회장이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찾아 배터리 협력 논의를 구체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3년 현대차와 삼성SDI는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삼성SDI는 2023년 10월 "오는 2026년부터 2032년까지 7년간 현대차의 차세대 유럽향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삼성SDI는 현대차에 6세대 각형 배터리인 P6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P6는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배터리의 양극재 중 니켈 비중을 91%로 높이고 음극재에 실리콘 소재를 적용해 에너지밀도를 극대화한 제품이다.
앞으로 현대차그룹과 삼성SDI의 배터리 협업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와 삼성SDI는 지난해 로봇 전용 고성능 배터리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삼성SDI는 2027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로봇용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이미 삼성SDI는 현대차의 모빌리티 플랫폼 '모메드' 배터리도 공급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부터 로보틱스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부품 분류 작업에 투입 예정할 예정이다. 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와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삼성SDI는 2분기 실적발표 당시 "로봇, 휴머노이드, 우주·항공용 배터리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며 "휴머노이드용 전고체 배터리 고객사와 구체적으로 협력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