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 4사의 윤활기유 사업이 휘발유 ·경유 등을 포함한 정유 사업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이면서 올해 2분기 호실적을 견인했다.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중동 지역의 윤활유 생산 시설이 파괴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이 만들어 낸 효과다.
19일 SK이노베이션·에쓰오일·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실적 발표를 종합하면 2분기 윤활기유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30~50%대를 기록했다. 최대 10% 중반대인 정유 부문의 영업이익률을 넘어선다. 영업이익률이 높을수록 석유 제품을 높은 가격에 판매했다는 뜻이다.
SK이노베이션의 윤활기유 사업을 담당하는 SK엔무브의 2분기 윤활기유 부분 영업이익률은 34.9%, 에쓰오일은 36.7%, GS칼텍스는 52.14%, HD현대오일뱅크는 48.6%다.
정유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이보다 낮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4.9%, 에쓰오일은 5.9%, GS칼텍스 16.54%, HD현대오일뱅크 15.54%를 기록했다.
SK엔무브는 윤활기유 사업에서만 691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267.1% 증가한 수치다. 에쓰오일의 윤활기유 영업이익은 4774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9650억원)의 절반을 차지했다.
GS칼텍스의 윤활기유 부문 영업이익은 357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13% 증가했다. HD현대오일뱅크도 윤활기유 부문에서 지난해 동기보다 271% 증가한 181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윤활기유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부가 사업 취급을 받았다. 윤활기유는 자동차 엔진오일, 산업용 윤활유 등 완제품인 윤활유의 원료다.
반전을 일으킨 전 미국과 이란 전쟁이다. 지난 3월 이란의 공격으로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단지 내 쉘(Shell)·카타르에너지의 석유 합작 설비인 '펄 GTL(Pearl Gas-to-Liquids)'이 피해를 입었다. 펄 GTL은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GTL 플랜트로 원유가 아닌 천연가스를 원료로 경유, 윤활기유, 나프타 등 석유 제품을 만들어낸다.
펄 GTL은 그동안 연간 약 100만~140만톤의 윤활기유를 만들었다. 특히 고급 윤활유 원료인 '그룹3 윤활기유' 전 세계 공급량의 약 30%를 책임지던 시설이다. 카타르에너지에 따르면 펄 GTL 설비 복구에만 1년 이상이 걸릴 예정이다. 카타르에너지는 일부 장기계약 물량에 대해선 불가항력 선언을 한 상태다.
게다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기존에 생산된 물량마저 시장에 풀리기 힘들어졌다. 결국 공급이 줄면서 윤활기유 가격과 마진이 뛰었다. 윤활기유 스프레드(원유와 석유제품 가격 차이)는 1년 전 배럴당 70달러 초반에서 올해 2분기 기준 160달러대로 두 배 이상 올랐다.
국내 정유 4사가 그룹3 윤활기유 중심으로 사업 재편을 해놓은 덕도 봤다. 국내 정유 4사는 범용 제품 대신 고부가가치 상품에 속하는 그룹3 윤활기유 생산능력을 확보해 뒀다. 정유업계에선 SK엔무브와 에쓰오일이 전 세계 그룹3 윤활기유 생산량의 약 40%를 담당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HD현대오일뱅크도 그룹3 윤활기유 사업에 뛰어들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자회사 HD현대쉘베이스오일을 통해 그룹3 윤활기유 공장을 증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윤활기유 생산량을 급격하게 높일 수 없는 만큼 현재 마진이 계속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윤활기유 마진이 뛰었다고 해서 급격하게 윤활기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유를 넣은 양에 비례해 경유, 휘발유, 윤활기유 등이 나오는 비중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중동 지역 내 윤활기유 생산 차질이 정상화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리면 지금 누리던 마진은 과거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