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LS MnM 온산제련소 제련 1공장에서 직원이 지난달 15일 긴 작대기를 들고 구리물이 틀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뉴스1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붐을 타고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지만, 구리를 만드는 제련업체들은 웃지 못하고 있다. 구리 공급 부족이 지속된 가운데 제련소 간 경쟁은 치열해지면서 제련 수수료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 구릿값 올라도 제련 수수료는 여전히 '0원'

18일 제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13일(현지시각) 기준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 현물 가격은 t(톤)당 1만4285달러로, 지난 6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1만4455달러) 부근에서 거래됐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등에 들어가는 구리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신규 광산 개발은 더디게 진행되면서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광산 발견부터 생산까지는 평균 17년이 걸린다. 기존 광산에서 캐내는 광석의 구리 함량도 1991년보다 평균 40% 낮아졌다. IEA는 현재 추진 중인 광산 프로젝트가 모두 계획대로 진행되더라도 2035년에도 구리 공급이 수요보다 약 25%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련업체는 광산업체가 보내온 구리 원료를 고순도 구리로 가공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그런데 광산에서 나오는 원료는 충분히 늘지 않는 반면 제련소는 빠르게 증가했다. 한정된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제련업체끼리 '누가 더 싸게 가공해 주느냐'를 놓고 경쟁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중국은 2005년 이후 세계 제련 생산 증가분의 90% 이상을 차지했고, 지난해 세계 전기동 생산의 절반을 담당했다. 제련업계 관계자는 "원료는 줄어들고 있는데 제련소는 늘고 있다"며 "과거 을(乙)이던 광산업체들이 갑(甲)이 돼 제련사를 고르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제련 수수료는 2024년 t당 80달러에서 지난해 21.25달러로 떨어졌고 올해는 연간 계약 기준으로 0달러가 됐다. 현물 시장에서는 수 개월째 제련 수수료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제련업체가 가공비를 받기는커녕 제련업체가 사실상 비용을 부담해 가며 원료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일부 해외 제련소는 생산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다.

◇ 금·은·황산으로 손실 메우는 제련사

제련 수수료가 무너지면서 제련업체가 돈을 버는 방식도 달라졌다. 시장조사업체 CRU에 따르면 2018년에는 제련·정련수수료가 제련소 수입의 39%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프리 메탈'이 50~53%, 황산 등 부산물이 25~27%를 차지했다.

프리 메탈은 광산업체에 값을 치른 양보다 제련 과정에서 실제로 더 많이 회수한 구리·금·은 등의 금속이다. 제련수수료가 줄면서 원료에 섞인 금·은 등을 더 많이 회수하고 제련 과정에서 나오는 황산까지 판매해 수익을 내는 비중이 커진 것이다.

국내 최대 동제련업체인 LS MnM도 금, 은과 황산 등 부산물 수익으로 제련 수수료 하락분을 메우고 있다. LS MnM은 1분기에 제련비가 급락한 상황에서도 금, 은과 황산 등 부산물 가격 상승 흐름을 타고 1896억원의 이익을 냈다. 2분기에도 황산 가격 급등으로 실적이 개선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중동발 공급 차질 등으로 동아시아 황산 가격은 2분기 말 t(톤)당 300달러 안팎까지 올라 전년 동기의 약 3배 수준이 됐다.

고려아연은 광산에서 나오는 구리 원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폐전자제품, 폐전선 등 재활용 원료를 활용한 구리 생산을 늘리고 있다. 원료 확보 부담을 줄이면서 구리 생산량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올해 구리 생산량을 5만t 이상으로 늘리고, ​장기적으로 연 15만t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리 가격이 더 오르더라도 원료 부족과 제련업체의 과열 경쟁 구도가 해소되지 않으면 수익성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제련 수수료에 의존하던 기존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원료를 다변화하고 부산물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업체와 그렇지 못한 업체 간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