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가정. 팔다리 달린 휴머노이드 로봇이 진공청소기를 밀며 바닥을 훑는다. 조리대를 닦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치우는가 하면 쓰레기통도 비운다. 미국 로봇 스타트업 타우로보틱스는 지난달 28일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휴머노이드를 이용한 가정 방문 청소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 시간 동안 로봇이 집을 청소해 주는 대가로 내는 비용은 30달러(약 42000원).
다만 이 로봇이 집 안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 청소하는 것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내 타우로보틱스 자체 시설에서 훈련받은 직원이 로봇의 카메라 영상을 보며 실시간으로 조종하고, 인공지능(AI) 시스템이 동작 제어를 보조한다. 이 때문에 현지에선 '사람을 부르는 것보다 저렴해 한번 이용해 볼 만하다'는 반응과 함께 '어차피 사람이 조종한다면 그냥 사람 청소부를 부르는 게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타우로보틱스가 사람까지 붙여가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로봇 청소 서비스를 하는 진짜 목적은 현실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로봇이 청소하는 동안 머리와 손목에 달린 카메라는 집 안을 계속 촬영한다. 관절의 위치와 힘, 균형 상태 같은 로봇의 움직임 정보와 사람이 내린 조작 명령, 방 구조와 물건 위치를 나타내는 3차원 공간 정보도 함께 기록된다. 이 데이터는 시각·언어 정보를 실제 로봇의 움직임과 연결하는 VLA(비전·언어·행동) 모델을 학습하는 데 쓰인다.
타우로보틱스 측은 "데이터 수집이 서비스의 부수적인 결과가 아니라 '핵심 목적'이라 이런 가격을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수집한 영상과 로봇 데이터는 이용자가 삭제를 요청하지 않는 한 보관한다.
타우로보틱스가 첫 서비스 무대로 가정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집마다 구조와 가구 배치가 다르고, 같은 컵을 치우더라도 모양과 위치, 주변 장애물이 매번 달라진다. 조리대를 닦거나 빨래를 접을 때 필요한 힘도 제각각이다.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로봇을 직접 조종하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행동 데이터가 작업할 때마다 쌓인다.
알렉산더 코흐 타우로보틱스 최고경영자(CEO)는 "가정 청소는 소비자 수요가 분명한 데다 로봇이 다양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실제 환경을 경험할 수 있어 휴머노이드가 시작하기 좋은 분야"라고 말했다.
학습 데이터 확보가 급한 로봇기업들은 사람까지 직접 고용해 '정답 동작'을 만들어내고 있다. 테슬라는 미국 팔로알토에서 '옵티머스 데이터 수집 운영자'를 채용하고 있다. 직원이 모션캡처 장비를 착용한 채 물건을 옮기거나 정해진 경로를 걸으면 그 움직임을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학습 데이터로 만드는 방식이다. 하루 7시간 이상 장비를 착용한 채 걸을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미국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피규어AI 또한 휴머노이드의 전신 움직임을 제어하는 AI 모델 '헬릭스 02'에 1000시간이 넘는 사람의 움직임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20만개 이상의 가상 환경에서 훈련을 반복했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가 사람과 로봇을 대규모로 투입해 데이터를 찍어내는 '데이터 공장'을 곳곳에 운영하고 있다. 상하이 로봇 스타트업 애지봇의 데이터 수집 시설에서는 약 100대의 로봇을 200명의 사람이 조종한다. 하루 17시간 동안 티셔츠 접기와 샌드위치 만들기, 문 열기 같은 작업을 반복하며 데이터를 쌓는다.
상하이시는 이 시설에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베이징 스징산의 1만㎡가 넘는 훈련장에서도 휴머노이드 100대가 물류·소매점 환경을 재현한 공간에서 옷을 접고 택배를 분류하거나 열쇠로 문을 여는 작업을 반복하며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국내에서도 같은 경쟁이 시작됐다. LG전자는 서울 양재R&D캠퍼스에 연내 가동을 목표로 대규모 로봇 학습용 데이터팩토리를 구축 중이다. 이곳에선 당장 홈로봇 'LG 클로이드'가 물건을 잡고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동작 데이터를 생산·학습한다. 삼성도 경북 구미에 휴머노이드 양산 체계와 로봇 데이터팩토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로보티즈는 서울 마곡 본사에 휴머노이드 'AI 워커' 50대와 조종 인력을 배치해 행동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사람이 외골격 형태의 '리더암'을 착용해 움직이면 휴머노이드가 같은 동작을 따라 하면서 영상과 관절 움직임 등을 기록한다. 우즈베키스탄에는 휴머노이드 수천대를 투입해 행동 데이터를 대규모로 수집·가공하는 '피지컬AI 데이터팩토리'를 만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실 데이터는 성공한 동작뿐 아니라 어디서 실패했고, 사람이 힘과 자세를 어떻게 바꿔 작업을 이어갔는지까지 촘촘하게 담는 게 중요하다"며 "이런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AI가 정답 동작을 따라 하는 수준을 넘어 처음 마주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판단해 움직임을 수정할 수 있어 로봇업계의 데이터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