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조선업계가 무탄소 에너지원 암모니아를 운송하거나 추진 연료로 쓰는 선박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중 간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경쟁의 전선이 액화천연가스(LNG)를 넘어 암모니아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한·중 조선사들은 액화암모니아를 운반하는 선박인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과 암모니아를 추진 연료로 사용하는 암모니아 이중 연료(DF) 추진선 시장에서 '세계 최초' '세계 최대' 타이틀을 놓고 맞붙었다.

HD현대삼호가 건조한 9만3000㎥급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HD현대삼호는 2026년 7월 27일 첫 VLAC를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Maersk)에 인도했다고 밝혔다. 2023년 11월 수주한 5척 중 첫 번째 선박이다. 액화암모니아와 액화석유가스(LPG)를 모두 운송할 수 있다. /HD현대삼호

◇한·중, 암모니아 실어나르는 VLAC 수주전 접전

1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발주된 20여척의 VLAC 건조 물량을 한국과 중국 조선사들이 거의 절반씩 가져갔다.

VLAC는 액화암모니아 화물창 용량이 8만~9만㎥ 규모인 대형 가스 운반선이다. VLAC는 액화석유가스(LPG) 등 액화가스를 운반하는 초대형 가스 운반선(VLGC)과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VLGC와 VLAC 모두 LPG와 암모니아를 실어나를 수 있다. VLGC 를 기반으로 암모니아 운송을 주목적으로 설계한 배를 VLAC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액화암모니아를 운반하는 VLAC는 부식성이 강한 암모니아의 물성과 높은 밀도 때문에 건조 기술 난도가 높은 선종으로 꼽힌다. 독성이 강해 누출 방지 관리도 중요하다. 화물창, 선체 구조, 안전 시스템, 가스 화물 처리 등 설계가 일반 가스 운반선보다 까다로운 기술집약형 선박이다. 이 때문에 선가와 수익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꼽힌다.

암모니아 운반선은 점차 대형화되는 추세다. 암모니아는 비료·화학제품 원료로 오래전부터 해상 운송돼 왔다. 주로 LPG 계열의 중형 가스 운반선이나 VLGC로 운송해 왔다. 최근에는 암모니아가 선박 연료와 수소 운반체(수소를 암모니아로 전환해 운송)로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교역량 확대 전망에 따라 장거리 암모니아 운송에 특화 설계된 초대형 VLAC 수요가 늘고 있다.

지난달 HD현대 소속 HD현대삼호는 그리스·튀르키예계 해운사 시너쉬핑으로부터 9만㎥급 VLAC 3척을 수주했다. 수주액은 총 5456억원으로, 척당 선가는 1818억원(1억2090만달러) 수준이다. 2030년 5월까지 배를 인도할 예정이다.

시너쉬핑은 지난 5월 HD현대삼호에 총 1조782억원 규모의 VLAC 6척을 발주한 데 이어, 두 달 만에 3척을 추가 발주했다.

HD현대 계열 조선사들이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VLAC를 만들고 있다. HD현대삼호는 앞서 3월 벨기에 선주 트랜스페트롤에서도 총 3402억원 규모의 VLAC 2척을 수주했다. HD현대삼호는 지난달 말 기준 22척의 VLAC 수주 잔량을 갖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현재 그리스 선주 아틀라스마리타임이 2024년 발주한 8만8000㎥급 VLAC 3척을 건조 중이다. 내년 선박 건조가 끝나면 싱가포르 기반 글로벌 원자재 거래 기업 트라피구라가 배를 빌려 쓰기로 했다.

한화오션은 지난 4월 런던 기반 조디악마리타임으로부터 총 5074억원 규모의 VLAC 3척을 수주했다. 조디악마리타임은 VLAC 2척을 추가 발주할 수 있는 옵션도 설정했다. 옵션 2척을 제외하고 한화오션은 4월까지 누적 10척의 VLAC 수주 실적을 쌓았다.

중국 장난조선이 건조한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아이비코브호(Ivy Cove). /장난조선

중국에서는 중국 최대 조선업체인 국영 중국선박집단(CSSC) 산하 장난조선과 민영 석유화학 기업 헝리집단 산하 헝리중공집단이 VLAC 건조에서 앞서 있다.

장난조선은 지난 6월 9만3000㎥급 VLAC 1척을 싱가포르 선주 EPS에 인도했다. 장난조선이 자체 설계한 9만3000㎥급 VLGC(초대형 가스 운반선)를 개량한 선형이다.

장난조선은 이 선박을 '세계 최대' VLAC로 선전하고 있다. HD현대삼호가 지난달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에 인도한 9만3000㎥급 VLAC보다 인도 시점이 한 달가량 앞섰다.

이 선박은 2023년 5월 중국 조선업계가 처음으로 수주한 VLAC 중 일부다. 당시 EPS는 장난조선에 VLAC 6척 건조를 주문했다. 당시 조선업계에선 중국이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 같은 범용선뿐 아니라 그동안 한국 조선소들이 주도했던 고난도·고부가가치 가스 운반선 분야로 영향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장난조선은 올해 1월 EPS로부터 9만㎥급 VLAC 2척을 추가 수주했다. 중국 톈진시난해운, 그리스 선사 테나마리스에서도 9만㎥급 VLAC 각 2척을 수주하는 등 올해 상반기 VLAC 건조 물량 6척을 따냈다.

헝리중공집단은 두바이 기반 에마라트마리타임 등으로부터 올해 2월과 4월 9만3000㎥급 VLAC 총 4척을 수주했다. 헝리중공은 7월에도 세 곳의 다른 선주로부터 VLAC 6척 건조 계약을 따냈다. 이 중 4척은 9만3000㎥급, 나머지 두 척은 8만8000㎥급이다.

헝리중공은 지난 6월 드라이독이 아니라 선대(경사면으로 된 건조 시설)에서 건조한 9만3000㎥급 VLAC를 진수(처음 물에 띄우는 것)했다. 헝리중공은 "전 세계 최초로 초대형 VLAC를 드라이독에서 건조하지 않고 선대에서 건조해 바로 물로 진수한 사례"라고 자평했다. 관행을 깨고 선대에서 만드는 방식을 통해 독 없이도 대형 가스선을 건조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여줬다는 게 헝리중공 측 설명이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암모니아 이중 연료 추진 엔진 탑재 중형 가스 운반선의 시운전 모습. /HD현대중공업

◇친환경 선박 연료로 각광받는 암모니아

암모니아 이중 연료 추진선 분야에서도 한·중 경쟁은 거세다. 암모니아 이중 연료 추진선은 기존 선박 연료와 암모니아를 함께 추진 연료로 쓰는 배다. 암모니아는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친환경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5~7월 암모니아 이중 연료 추진 엔진을 장착한 4만6000㎥급 중형 가스 운반선 2척을 선주에 인도했다. 2023년과 2024년 벨기에 선사 엑스마르로부터 수주한 4척 중 일부다. HD현대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암모니아 추진선을 건조했다"고 설명했다.

HD현대중공업은 엑스마르·트라피구라 등으로부터 누적 8척의 암모니아 이중 연료 추진선을 수주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2050년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르면, 해운업계의 암모니아 연료 비중은 2030년 8%에서 2050년 46%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