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이 한국 방산·조선·우주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한국항공우주(KAI) 지분을 늘리고 미국 조선소를 보유한 오스탈 USA 인수를 추진하는 동시에 국내 우주 인프라 구축까지 수십조원을 쏟아부으면서다.

이러한 연쇄 투자에는 김 수석부회장이 과거 방산과 조선 분야에서 굵직한 인수·합병(M&A)과 구조조정을 성공시킨 경험이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김 수석부회장의 영토 확장 시도가 독과점 우려를 비롯한 각종 걸림돌을 넘어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14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KAI 지분율을 15.89%까지 끌어올리고,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 결합 심사를 신청했다. 한화그룹이 지난해 12월부터 KAI 지분을 집중 매입하는 데 투입한 자금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향후 KAI 민영화가 추진되면 한화그룹은 이렇게 확보한 지분을 바탕으로 인수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정서희

한화그룹은 경남 창원(한화에어로스페이스)과 사천(KAI), 전남 고흥(나로우주센터)을 연결하는 남부권 우주·항공 종합 벨트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구상은 지난달 경남 진주에서 공개된 'AI 우주강국 중장기 전략'으로 더욱 고도화됐다.

한화는 2040년까지 55조원을 투자해 독자 발사체와 저궤도 위성망, 우주 AI 데이터센터를 잇는 통합 인프라를 영남권에 조성할 계획이다. 최근 지역 거점 국립대에서 인재 확보 작업도 시작했다.

해양 분야에서도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호주 조선·방산 기업 오스탈의 미국 사업부인 '오스탈 USA' 지분 100%를 인수하는 데 최대 12억달러(약 1조7000억원)를 제안한 것이다.

오스탈 USA는 미국 내 조선소 2곳을 보유하면서 미 해군과 해안경비대에 전투함 등을 인도한 실적을 갖고 있다. 핵추진잠수함의 모듈도 만든다. 오스탈 USA를 인수하면 미 함정 건조부터 유지·보수·정비(MRO)는 물론, 잠수함 공급망에도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조 단위 연쇄 빅딜과 대규모 투자 계획 뒤에는 모두 김 수석부회장이 있다. 그는 2022년 8월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기존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대표에 더해 지주사인 ㈜한화와 한화에어로 전략부문 대표, 한화오션 기타비상무이사 등을 직함에 추가했다. 여기에 지난달부터는 수석부회장으로서 그룹의 중장기 성장 전략과 미래 동력 발굴, 대형 투자를 주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됐다.

◇ 광폭 행보, 방산 사업 개편·조선 인수 성공이 발판

재계에서는 김 수석부회장의 이러한 행보가 과거 성공 경험을 발판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2년 7월 말, 그룹 내 파편화돼 있던 방산 사업을 한화에어로로 통합한 대대적인 사업 구조 개편은 지금 한화가 KAI까지 인수해 '한국형 록히드마틴'을 만들겠다는 구상의 시발점이 됐다.

같은 해 연간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내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주도한 것도 김 수석부회장이다. 그가 경영 정상화 작업을 직접 챙긴 한화오션은 현재 2분기에만 7400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내는 등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안착했다.

한화오션이 한화시스템과 함께 2024년 12월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도 김 수석부회장의 안목을 보여준다. 당시 연간 건조 능력이 1척 수준에 불과하고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던 이 조선소는 이제 미 정부의 핵심 선박 사업을 잇달아 수주하며 양국 조선 협력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미국 조선업에 투자한 해외 기업 본국에서 미 해군 선박 두 척을 건조하도록 허용하면서, 미국에 선제 투자한 한화의 안목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김 수석부회장은 수조원대의 인수·합병(M&A)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부실 계열사를 빠르게 흑자로 전환시키면서 그룹 내부와 이사회,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며 "대규모 투자는 실패 시 그룹 전체를 흔들 수 있는 고위험 승부수지만, 이러한 성공 경험이 KAI와 오스탈 USA 인수 등 공격적 결단을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한화 제공

다만 김 수석부회장 앞에 놓인 과제도 명확하다. 먼저 KAI 인수의 경우, 최대 주주가 한국수출입은행(지분율 26.41%)인 만큼 정부의 민영화 방침이 먼저 결정돼야 한다. 최근 수은이 '우주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컨설팅' 용역을 발주하면서 민영화 밑작업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정부와 수은은 아직 KAI 민영화 관련 계획을 부인하고 있다. 향후 인수가 본격화할 경우 한화의 독과점 우려와 KAI 노조의 반발 등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2040년까지 추진되는 55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이 있다. 인공지능(AI)과 우주라는 미래 사업에 투자하는 만큼 실제 수익화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한화그룹이 다양한 사업에 공격적으로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데,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에 주력 사업의 업황 변동 등까지 겹치면 현금 흐름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외형 확장 못지않게 각 분야에서의 실질적인 시너지 창출과 내실 경영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