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겸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사 테라파워 창업자가 방한해 주요 재무적 투자사인 SK와 HD현대는 물론 두산에너빌리티, 현대건설 등 국내 원자력발전 관련 기업과 잇달아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내놓았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및 해외 시장에서 테라파워의 SMR 사업 개발과 미국 내 사업 참여 기회를 마련했다. SK는 테라파워의 2대 주주로 SMR 사업 개발 단계에서부터 파트너십을 맺어온 관계다.
HD현대는 주기기 제조를 맡았다. 현대건설은 설계·조달·시공을,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자로 관련 핵심 기자재 제조를 담당한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게이츠는 13일 늦게 방한해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등과 회동했다. 게이츠는 한성숙 국무총리는 물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도 면담했다.
게이츠의 이번 방한 의미가 남다른 것은 테라파워의 사업 단계가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테라파워는 게이츠가 설립한 SMR 개발 기업으로 기술 개발·투자를 넘어 상용화 단계로 진입했다. 테라파워는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을 증기발생기로 전달하는 냉각재를 경수(물)가 아닌 소듐(나트륨)을 사용하는 4세대 SMR을 개발, 건설에 들어갔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지난 3월, 테라파워의 SMR 발전소 프로젝트인 '나트륨(Natrium)'의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 1호기 건설 허가를 승인했다. 테라파워는 오는 2031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나트륨 프로젝트 건설을 진행 중이다. 대형 원전 주기기 제작부터 건설 경험이 있는 국내 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SK, 테라파워 SMR 사업 개발·미국 내 사업 참여 기회 마련
SK이노베이션과 테라파워는 이날 최 회장, 게이츠, 김 장관의 면담 종료 이후 '글로벌 공동사업 추진 계약을 위한 주요 조건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등에서 테라파워의 SMR 사업 개발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미국에서는 테라파워가, 미국 외 지역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게이츠는 방한 때마다 최 회장을 만나는 등 SK과의 관계를 다져왔다. 이는 SK가 테라파워의 2대 주주라는 점이 작용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22년 테라파워가 7억50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때 참여, 총 2억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월 한국수력원자력에 테라파워 지분 일부를 매각했으나, 2대 주주 지위를 유지 중이다.
게이츠는 지난해 8월 20~22일 방한 당시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SK 측 인사와 세 차례나 만난 바 있다. 지난해 8월 21일 게이츠는 서울 SK서린빌딩에서 최 회장과 만찬 회동을 했고 SMR, 백신 분야 협력 확대 방안 등도 논의했다.
◇ HD현대는 주기기·두산은 핵심 기자재 담당
HD현대는 테라파워의 주기기 제조를 담당할 예정이다. HD현대와 테라파워, 현대건설이 지난 5월 '차세대 나트륨 원자로 사업 협력을 위한 3자 업무협약'을 체결한 연장선에서 나온 결론이다. HD현대는 원자로 용기를 연간 2~3기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상용화에 앞서 생산 설비 투자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협력 방안 논의를 위해 정기선 HD현대 회장과 게이츠는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와 이날 서울 모처에서 회동했다. 정 HD현대 회장은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빌 게이츠를 만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3월 미국에서 나트륨 원자로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대 협약 체결했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에서 협력 진행 상황을 점검했고, 올해 1월에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SMR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HD현대는 SMR 핵심 부품인 주기기 제조 협력을 넘어 테라파워 투자사이기도 하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2년 11월 테라파워에 3000만달러를 투자했다. 2024년 12월에는 HD현대중공업이 나트륨 프로젝트의 원자로 용기 제작을 수주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나트륨 프로젝트의 핵심 기자재 제작 사업을 수주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나트륨 프로젝트의 원자로 보호용기, 원자로 지지구조물, 원자로 내부구조물 제작을 맡는다.
김정관 장관은 "SMR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계획된 예산과 기한 내 사업을 완료할 수 있는 사업 역량이 중요하다"며 "이런 역량을 갖춘 한국 기업이 테라파워의 비전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