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불리는 정부의 국내생산세액공제 대상 품목에서 전기차가 제외되자 완성차 업계는 물론 배터리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국내에서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가 강화돼 현대차·기아 등 전기차 업체들의 판매 부진이 가속화될 경우 결국 배터리 업체들까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2023년 11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내 전기차(EV) 신공장 부지에서 열린 울산 EV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13일 산업계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지난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 개편안'을 통해 내년부터 '국내생산세액공제'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오는 20236년 말까지 10년 한도로 시행될 예정이다.

국내생산세액공제는 한국 국적의 기업이 국내에서 생산과 판매를 할 경우 실적에 따라 세금을 줄여주는 제도다. 이는 미국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신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도입된 IRA와 유사한 구조와 목적을 가져 한국판 IRA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에 발표된 국내생산세액공제 대상 산업에는 ▲반도체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이차전지 ▲핵심소재 ▲인공지능(AI)로봇 등 6대 업종이 포함됐다. 그러나 전기차는 완성차 업계의 강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끝내 제외됐다.

정부는 국내에서 전기차 생산 체계가 이미 완성되고 시장도 성숙화 단계에 들어가 있는 데다, 이미 보조금 혜택이 주어진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전기차를 제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전기차 자체보다 핵심 부품인 이차전지 등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해 전기차 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높아지도록 제도를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기대했던 국내생산세액공제 대상에서 전기차가 제외되자,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은 중국 전기차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계속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가솔린, 디젤 등 내연기관차는 대당 영업이익률이 약 10% 수준에 이르지만, 전기차는 2.5%로 훨씬 낮다.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의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마진을 높이기 위해선 배터리 가격만큼 차값을 올려야 하지만, 이 경우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국내생산세액공제 대상에 전기차가 포함됐다면 비용을 절감하고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터라 재경부의 이번 결정에 국내 완성차 업계의 아쉬움이 큰 상황이다.

국내 전기차 시장은 중국산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테슬라는 중국에서 차를 만들어 국내로 들여오는데, 올 상반기 누적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92.2% 급증한 5만6139대를 기록했다. 테슬라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모델Y의 판매량은 4만3359대에 달했다. BYD의 경우 같은 기간 판매량이 1만1675대로 전년 동기 대비 807.9% 급증했다.

현대차는 올 상반기에 3만9575대를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46.5% 증가했지만, 테슬라 모델Y 한 종의 판매량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다. 기아는 전년 동기 대비 151.1% 늘어난 7만2078대를 판매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생산세액공제는 한국에서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전기차가 포함될 경우 내수 판매 물량을 모두 국내에서 만드는 현대차·기아는 상당한 혜택을 볼 수 있었다"며 "최종 대상 품목에서 전기차가 제외되면서 국내 업체들로서는 제품 단가를 낮출 만한 요인이 사실상 사라지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에서 국산 전기차의 입지가 좁아질 경우 국내 배터리 제조사에게도 장기적으로 악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가 주력하는 NCM(삼원계) 배터리는 주로 국내 완성차 업체들에게 공급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에서 LG에너지솔루션 부스를 찾은 사람들이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탑재한 르노 전기차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테슬라 모델Y의 경우 올 상반기 국내에서 3만1767대가 판매된 주력 제품인 후륜구동(RWD) 트림에 중국 CATL의 LFP 배터리를 탑재했다. 6947대가 팔린 모델Y L과 4645대가 판매된 모델Y 프리미엄 롱레인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의 NCM 배터리가 들어간다.

BYD는 지난 2003년 전기차 생산을 시작하기에 앞서 1995년 배터리 제조사로 설립된 기업이다. 따라서 BYD가 국내에서 판매하는 전기차에는 전량 자체 제작한 LFP 배터리가 탑재된다.

올해부터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한 중국 지리자동차 계열 고급 브랜드 지커는 첫 번째 모델로 중형 전기 SUV인 7X를 내세웠다. 7X는 프로와 맥스, 울트라 등 3가지 트림으로 판매된다. 프로 트림에는 지커가 자체 개발한 75킬로와트시(kWh)급 LFP 배터리가 탑재된다. 상위 모델인 맥스와 울트라 트림에는 NCM 배터리가 탑재되지만, 국내 업체가 아닌 중국 CATL의 제품이 들어간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국내생산세액공제의 혜택을 받아 제품 단가를 낮춰도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이 한국에 공장을 만들지 않는 이상 한국 배터리를 쓸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내 완성차 기업들이 가격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판매 부진이 지속될 경우 결국 배터리 제조사들 역시 전방 산업의 위축에 따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