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기사의 새벽 배송 노동 시간 제한을 추진 중인 여당이 법안 발의 당일 핵심 당사자인 택배업계를 배제한 채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리에서 여당은 택배비 인상 가능성을 사실상 인정했다고 한다. 택배업계 안팎에서는 대국민 영향이 큰 사안을 밀실 추진한다는 점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학계에서는 여당 방안대로라면 건당 1000원 이상 택배비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11일 국회와 택배업계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택배 생활물류법 개정 관련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은 을지로위가 새벽 배송 시간 제한 및 택배사의 사회보험료 전액 부담 등을 골자로 한 '생활물류법 개정안(염태영 의원 대표 발의)'을 국회에 제출한 당일이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주문 상품들에 대한 분류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연합뉴스

정작 법 개정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택배업계와 노동계는 비공개 간담회에 초청받지 못했다. 이 자리에는 민병덕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김남근·박홍배·염태영 민주당 의원, 한국온라인쇼핑협회, 녹색소비자협회 등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대다수 택배 기사는 수입 감소를 이유로 새벽 배송 노동 시간 제한을 반대하고, 택배사 역시 사회보험료 전액 부담 등에 대해 반발하는 상황이다.

국민 생활과 직결된 '택배비 인상'도 이날 비공개 간담회에서 논의됐다고 한다. 배송 시간이 제한되면 추가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고, 기사 수입 보전과 사회보험료 원청 부담까지 더해져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날 간담회에서 한 을지로위 관계자는 "한국교통연구원 연구 자료가 8월 말에 나온다"며 "이를 바탕으로 택배비를 얼마나 인상할지 논의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생활물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택배비는 상당한 폭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한국상품학회는 새벽 배송 노동 시간을 주 60시간에서 주 48시간으로 제한할 경우, 건당 1061원씩 인상 요인이 생긴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기존 종사자 수입 보전액과 추가 인력 인건비 등으로 월 369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데 따른 것이다.

이는 지난 2021년 사회적 합의 당시 인상분(약 170원)의 6배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민주노총 등 일부 노동계와 을지로위 의견대로 주 48시간 안팎에서 새벽 배송 노동 시간이 제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각 이해 당사자들은 지난해 9월 을지로위 주도로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새벽 배송 시간과 사회보험료 원청 부담 등을 논의해 왔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해 지난 4월 이후 대화가 중단된 상태다. 이처럼 사회적 대화가 겉도는 상황에서, 핵심 당사자인 택배사와 노동계를 배제한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사회적 대화의 본래 취지를 훼손한 것이라고 업계는 지적한다.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택배비 인상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 비용이 크게 늘어날 정책을 이야기하면서 가격 인상은 안된다는 것이다.

화주 측을 대변하는 한국온라인쇼핑협회는 "추가 비용을 일률적으로 화주나 소비자에게 전가시킬 것이 아니라, 택배사와 화주 간 협의 등의 형식으로 시장의 논리에 따라 가격이 형성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단체 측도 "생명을 담보로 하는 소비는 원치 않는다"면서도 "새벽 배송 제한이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을지로위는 한국교통연구원 등의 연구 결과가 나오는 이달 말 사회적 대화를 재개한다는 입장을 이번 비공개 간담회에서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택배비 인상을 비롯해 새벽 배송 노동 시간 제한, 사회보험료 원청 부담 등에 대해 재차 논의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