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의 육상 발전용 힘센엔진(HiMSEN)./HD현대 제공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발전 엔진 수요가 커지면서 선박엔진 생산업체들이 육상 발전 시장으로 사업을 넓히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선박용과 육상 발전용 엔진을 각각 전문 생산하는 체계를 추진하고, 한화엔진도 육상 발전에 쓸 수 있는 엔진 생산에 본격 나섰다. 선박용 엔진에서 오래 쌓아온 기술과 생산 기반이 AI 데이터센터 전력 시장으로 빠르게 확장되면서, 데이터센터용 엔진의 수주와 사업화 속도가 향후 성장성과 몸값을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육상 발전 수요 늘자 엔진 생산체계 재편

6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울산 엔진공장과 자회사 HD현대엔진의 전남 목포 공장, 향후 신설할 공장을 연계해 '힘센엔진' 생산체계를 용도별로 재편할 계획이다. 힘센엔진은 HD현대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4행정 중속엔진으로, 선박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등 육상 발전에도 쓰인다.

HD현대 계열사들은 현재 울산과 목포에서 선박용과 육상 발전용 힘센엔진을 함께 생산하고 있다. 앞으로 생산능력을 늘리면서 거점별 역할을 나눠 선박용과 육상 발전용 엔진 생산을 전문화한다는 구상이다.

선박용 엔진은 크게 2행정 저속엔진과 4행정 중속엔진으로 나뉜다. 2행정과 4행정은 엔진의 한 작동 과정에서 피스톤이 각각 두 번, 네 번 움직이는 방식을 뜻한다. 2행정 저속엔진은 주로 대형 선박의 프로펠러를 돌려 배를 움직이고, 힘센엔진과 같은 4행정 중속엔진은 선내 발전이나 중소형 선박 추진에 쓰인다. 이 중속엔진을 육상에 설치해 발전기를 돌리면 데이터센터에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중속엔진'이라는 이름도 배가 움직이는 속도가 아니라 엔진이 회전하는 속도에서 따왔다.

생산채계를 손보는 건 늘고 있는 육상 발전용 엔진 수요에 대응하면서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특히 데이터센터에서는 출력이 큰 엔진을 찾는 고객이 늘어 기존 엔진과는 다른 부품 조달 체계가 필요해진 상황이다. 추가 생산 시설에는 통합 생산체제를 적용하고 주요 기자재의 자체 생산도 늘릴 방침이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달 29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고객들이 대출력 엔진을 많이 선호하고 있다"며 "기존과 다른 생태계인 만큼 공급망을 같이 육성하는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육상 발전용 엔진 수요가 빠르게 커진 건 발전설비 공급난 여파다. AI 데이터센터용 가스 발전의 핵심 설비인 대형 가스터빈은 주문이 몰리면서 주요 업체의 납기가 최대 2030년까지 밀렸다. 이에 가스터빈을 기다리는 대신 중속엔진 여러 대를 설치해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중속엔진은 현재 대형 가스터빈보다 납기가 1년이상 빠르다"며 "이 때문에 데이터센터용 육상 발전엔진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여 증설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HD현대重은 수주 확보… 한화는 생산 시작

육상 발전용 힘센엔진은 이미 HD현대중공의 효자 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올 2분기 엔진기계사업부의 영업이익은 2364억원으로, 전사 영업이익 1조399억원의 약 23%를 차지했다. 영업이익률은 24.8%로 1년 전보다 6.9%포인트 높아졌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육상 발전 등 힘센엔진 매출 증가가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미국 데이터센터 시장에서도 수주가 시작됐다. 지난 4월 미국 에너지 인프라 개발기업 아페리온에너지그룹(AEG)과 20메가와트(MW)급 힘센엔진 기반 발전설비 총 684MW를 6271억원에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HD현대중공업이 미국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따낸 첫 발전엔진 계약으로, 이 매출은 2028년부터 2030년까지 순차 반영될 전망이다.

한화엔진도 4행정 중속엔진 생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2분기 연간 최대 180대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첫 엔진 조립을 시작했다. 3분기부터 첫 시험과 제품 인도에 나설 예정이다. 독일 엔진업체 에버런스의 기술을 기반으로 생산하며, 새 생산능력의 절반 이상은 우선 선박용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육상 발전용 등에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데이터센터용 엔진 사업화 속도를 기업가치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유안타증권은 AI 데이터센터용 중속엔진 증설을 HD현대중공업의 주가 상승 요인 중 하나로 꼽고, 엔진 부문에 주가수익비율(PER) 25배를 적용해 적정 가치를 15조원으로 평가했다. 반면 다올투자증권은 한화엔진의 데이터센터용 엔진 사업화가 HD현대중공업보다 늦을 것으로 본 점 등을 반영해 적정 PER을 30배에서 25배로 낮췄다. 목표주가도 11만2000원에서 9만1000원으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