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고공 행진하면서 주요 구매자인 발전사들의 비용 부담이 한층 커질 전망이다. 중동 사태로 발전사들이 연료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석탄 화력발전을 늘려 탄소배출권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탈탄소 규제 강화로 탄소배출권 공급량은 줄어 가격이 더 오르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발전사들의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 증가는 발전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공장에서 연기가 배출되고 있다./제미나이 나노바나나

5일 한국거래소 배출권시장 정보 플랫폼에 따르면 국내 탄소배출권(KAU25년물) 가격은 지난 4일 기준 기준 톤(t)당 2만5650원에 형성됐다. t당 1만300원 수준이었던 연초 대비 2.5배가량 오른 상태다.

탄소배출권은 온실가스를 일정 기간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정부가 기업별로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정해 배출권을 할당한다. 탄소배출권이 남는 기업은 모자란 기업에 돈을 받고 팔 수 있고 반대로 배출권이 모자라는 기업은 남는 기업에서 사서 쓸 수 있다.

보통 기업은 1월에서 12월까지 한 해 동안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한 다음 이듬해 3월까지 정부에 명세서로 제출한다. 정부는 이를 검토해 5월 말쯤 부족하거나 남는 부분 등을 각 기업에 통보한다. 기업은 정부에서 받은 결과를 토대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8월 말까지 추가 구매하는 식이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진다. 이 때문에 배출권 가격 상승은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유인이 된다.

최근 탄소배출권 가격이 뛴 배경에는 향후 탄소배출권 공급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제4차 계획 기간(2026~2030년)에 탄소배출권 배출 허용 총량을 약 25억3730만t으로 확정했다. 이는 이전 계획 기간 대비 약 17% 감소한 규모다. 2030년에는 총량을 3억6000만t까지 줄이는 것이 정부 목표다.

올해는 특히 발전사가 구매해야 하는 탄소배출권 물량이 급증할 전망이다. 중동 사태 이후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수급이 불안해지면서 비상 대응 조치로 석탄화력 발전을 늘린 영향이다. 석탄화력 발전은 다른 주요 발전원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 발전량이 늘면 탄소배출권 수요도 증가한다.

지금까지 시장에서 거래된 전체 탄소배출권 중 약 40%를 발전 5사가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올해 중동 사태 이후 발전 5사 모두 석탄화력 발전량이 늘어서 구매해야 하는 탄소배출권 양이 더 늘어났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감축 규제가 강화되면서 탄소배출권 가격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탄소배출권 전문 기업 에코아이의 박현신 팀장은 "제3차 계획 기간까지는 탄소배출권 시장이 침체기였으나 제4차 계획 기간부터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강화돼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기업에 주어지는 할당량이 줄다 보니 배출권 가격이 오를 거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발전사들이 부담하는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은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항목 중 '기후환경요금'에 반영된다. 배출권 이행 비용은 현재 킬로와트시(kWh)당 약 1.1원 수준으로 아직 부담이 크지 않지만, 배출권 가격 상승세 지속으로 향후 이행 비용이 커지면 장기적으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5년 정도 지나면 발전사가 부담하는 배출권 이행 비용이 kWh당 10원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며 "탄소 배출로 인한 비용을 기업이 먼저 부담하고 이는 결국 소비자 가격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은 세계적인 추세인 만큼 사회 전체가 (비용을) 떠안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