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개발할 신모델은 예외나 조건부 승인을 받지 못하면 미국 판매가 막힐 수 있다."
이달 상하이 증시 상장을 앞둔 중국 로봇업체 유니트리가 상장 신고서에서 투자자들에게 이같이 경고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난달 28일 외국에서 생산한 신규 이동형 로봇의 미국 시장 진입을 제한한 여파다. 유니트리는 "규제가 기존 승인 제품까지 확대되면 현재 제품도 판매가 중단될 수 있다"고 했다. 유니트리의 미국 매출 비중은 약 17%에 달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로봇 부품 공급망으로 번지고 있다. FCC가 외국산 이동형 로봇을 국가안보 위험 장비 목록에 올리면서 중국산 로봇 몸체와 센서·모터·감속기에 자체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를 얹어 로봇 개발 속도를 높여온 미국 기업들도 대체 공급망을 찾아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산 로봇을 밀어내려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하면 현지 납품 경험과 양산 능력을 갖춘 국내 로봇 부품사에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中 로봇 키운 美 시장, 공급망 다시 짠다
4일 로봇업계에 따르면 미 당국의 규제 대상은 휴머노이드와 4족 보행 로봇뿐 아니라 로봇청소기·배달 로봇 등 센서와 통신 기능을 갖춘 이동형 로봇 전반이다. 외국산 제품을 미국에서 판매하려면 예외를 인정받거나 조건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조건부 승인 심사에서는 부품·소프트웨어의 원산지와 공급망 의존도를 공개하고 미국 내 생산 확대 계획도 제시해야 한다. 단순한 보안 규제를 넘어 로봇 생산과 핵심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로봇에도 규제 칼날을 들이댄 건 로봇 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전 세계 휴머노이드 출하량의 약 85%를 중국 업체들이 휩쓸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 로봇은 미국 연구기관과 기업의 실험 장비로 빠르게 퍼졌다. 이들은 중국산 로봇 몸체와 핵심 부품을 사들여 하드웨어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AI 모델과 제어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했다. 실제로 세계 휴머노이드 출하량의 약 20%를 차지한 유니트리도 미국 대학과 연구기관을 최대 고객층으로 두고 있다.
이번 조치로 중국산 하드웨어에 기대온 미국 기업들은 공급망을 다시 짜야 할 상황에 놓였다. 대표적으로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양산에 대비해 중국에 공급망 조직을 꾸리고 현지 업체들과 코어리스 모터·감속기·센서 등 수천대분의 부품 조달을 논의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대표적인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피규어AI 역시 일부 휴머노이드 관절과 센서, 모터에 중국 공급업체를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 현장도 비슷하다. 엔비디아는 지난 6월 유니트리의 'H2 플러스' 로봇 몸체와 싱가포르 샤르파의 로봇핸드에 자체 AI 컴퓨터를 결합한 연구용 휴머노이드 플랫폼을 공개했고, 스탠퍼드대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립대 등이 초기 사용자로 참여했다. 기존 제품은 당장 사용할 수 있지만, 앞으로 출시되는 중국산 신형 로봇을 들여오기는 까다로워진 것이다.
◇中 공급망 빈자리 노리는 韓 부품사
미국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시작하면 국내 로봇 부품사에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 휴머노이드에는 관절의 힘과 움직임을 제어하는 액추에이터가 한 대에 수십 개씩 들어간다. 이를 구성하는 모터와 정밀 감속기, 물체를 잡는 로봇핸드도 핵심 부품이다. 이번 조치가 중국산 부품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미 당국이 로봇의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내 생산 확대의 고삐를 죌수록 비중국 업체로 부품 구매처를 넓히려는 움직임도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업체들은 이미 북미 고객 확보에 공을 들여왔다. 로보티즈는 지난해 미국에 100억원 이상의 로봇용 액추에이터를 판매했다. 미국이 전체 해외 매출의 약 44%를 차지했다. 로보티즈 관계자는 "10여년 전부터 미국 판매 제품에 필요한 FCC 승인을 받아 로봇 액추에이터를 공급해 왔는데, 올해 수요가 상당히 늘고 있다"며 "액추에이터와 로봇핸드는 이번 조치 이후에도 미국에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피지와 에스비비테크, 삼현은 지난 6월 미국 시카고 자동화 전시회에서 정밀 감속기와 액추에이터 등 휴머노이드 구동 부품을 선보였다. 테솔로도 미국 보스턴에서 자체 액추에이터를 적용한 다섯 손가락 로봇핸드를 공개하는 등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중국산 공급망의 빈자리가 곧바로 국내 업체의 수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규제는 외국산 신규 이동형 로봇 전반에 적용되는 만큼 국내 업체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와 신규 부품도 예외를 인정받지 못하면 조건부 승인을 거쳐야 한다. 로보티즈는 'AI 워커' 등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해 미국 인증을 밟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중국 업체에는 예외가 폭넓게 적용될 가능성이 있지만, 자동 면제는 아닌 만큼 미국 인증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며 "결국 중국산에 맞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미국 수요를 감당할 대량생산 능력을 얼마나 빨리 갖추느냐에 따라 실제 반사이익이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