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 년 간 이어진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올해 2분기에 모두 흑자를 기록한 가운데 하반기 실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이 점차 회복되고 있는 데다, 최근 인공지능(AI) 산업 투자 확대로 데이터센터용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의 수요도 늘고 있어 하반기에도 훈풍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미시간주의 LG에너지솔루션 홀랜드 공장 전경. /LG에너지솔루션 제공

3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지난 30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한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모두 영업이익 흑자를 거뒀다. 분기 기준으로 배터리 3사가 동반 흑자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24년 3분기 이후 7개 분기 만에 처음이다.

매출 규모가 가장 큰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2분기에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24.8% 증가한 7조5602억원에 달했고, 영업이익은 113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77% 급감했지만, 이는 지난해 2분기에 대규모 일회성 수익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회사의 설명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2분기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세액 공제(AMPC) 금액 4908억원이 들어오면서 492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바 있다. 세액 공제를 제외한 영업이익은 14억원에 그쳤다. 이를 감안하면 올 2분기에는 1100억원 넘게 이익이 증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SDI의 경우 금융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실적을 기록하며 '어닝 서프라이즈'에 성공했다. 삼성SDI는 올 2분기에 203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7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3조7688억원으로 18.5% 늘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실적 발표 전 삼성SDI는 7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손실액 3978억원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지만, 적자를 피하지는 못할 것이란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었다.

SK온도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전날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의 2분기 영업이익이 8218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SK온은 지난 2024년 3분기에 24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후 7개 분기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올해 2분기에 배터리 제조사들의 실적이 호전된 데는 일회성 요인의 영향이 컸다. 삼성SDI는 미국의 AMPC 수령액이 1077억원 들어왔다. SK온의 경우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AMPC 금액과 함께 고객사인 완성차 업체로부터 거액의 보상금을 받은 것이 실적에 반영됐다. 보상금은 전기차 시장 침체로 완성차 업체들이 계약한 만큼 배터리를 구매하지 못해 SK온에 지급한 돈을 뜻한다.

금융 시장과 업계에서는 배터리 시장의 업황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회성 요인이 실적 개선에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전기차 시장이 회복되고 ESS 시장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 사업에서도 이익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배터리 제조사들의 실적 개선 흐름은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하반기 실적 개선을 이끌 사업으로는 ESS가 꼽힌다. 특히 북미 시장에서 신재생 에너지 관련 시설과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ESS용 배터리 수요가 계속 늘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북미 시장의 생산 능력이 확대됨에 따라 3분기 ESS 출하량이 전분기 대비 50% 급증하고, 원통형 배터리 공급과 전기차 물량 확대도 예상된다"며 "3분기 매출액이 전분기보다 20%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SDI도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세운 미국 인디애나주 공장에서 10월부터 ESS용 배터리 생산을 시작한다.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북미 ESS 시장을 배터리 업계의 가장 중요한 성장 축으로 꼽았다. 미국 ESS 수요는 지난해 90GWh(기가와트시)에서 오는 2030년에는 160GWh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AI 투자 확대로 데이터센터용 ESS 수요는 지난해 9GWh에서 2030년 40GWh로 연평균 30%를 웃도는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조지아주 잭슨 카운티에 위치한 SK온 배터리 공장 전경. /SK온 제공

미국 ESS 수요 확대의 수혜는 고스란히 국내 제조사들이 누릴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중국 배터리 업체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중국산 ESS 배터리에 43.4%의 관세와 보조금 제한 규정을 동시에 적용하고 있는 반면 미국산 부품 요건을 충족한 ESS 프로젝트에는 최대 40%의 세액 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며 "이 구조는 북미에서 생산 능력을 확보한 한국 배터리 업체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최근 수 년 간 침체에 허덕였던 전기차 시장이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호재로 꼽힌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지난해 10월부터 전기차 신규 구매자에 대한 세액 공제 혜택을 폐지해 전기차 시장이 둔화된 상태지만, 유럽 등 다른 글로벌 시장에서는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유럽 내 전기차 판매량은 122만89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5% 급증했다. 국내 시장 역시 같은 기간 전기차 신차 판매대수가 19만8969대로 전년 동기 대비 112.6% 늘었다.

우선 유럽은 일부 국가들이 최근 전기차 보조금 지원을 확대한 것이 영향을 줬다. 독일의 경우 지난 2023년 말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폐지했지만, 올해부터 다시 시행해 2029년까지 지원을 계속하기로 했다. 내수가 어려워지자 글로벌 시장으로 물량을 쏟아내는 중인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저가 공세도 유럽 판매 증가에 한 몫을 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가격이 비싼 NCM(삼원계) 배터리에서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렴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에 강한 중국 제조사들과 힘겨운 경쟁이 예상된다"면서도 "유럽을 비롯한 전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점은 실적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