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SK그룹과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SK실트론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두산은 주력 사업인 에너지와 기계에 이어 반도체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그룹의 지주사인 ㈜두산은 31일 SK그룹으로부터 SK실트론 지분 70.6%를 인수하는 내용의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인수 대상 지분은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로 매각 금액은 2조3000억원이다. 다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한 지분 29.4%는 이번 인수 대상에서 제외됐다.
SK실트론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 웨이퍼를 생산하는 회사다. 12인치 웨이퍼 기준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세 번째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한다. SK실트론의 기업 가치는 지난해 5조원 이상으로 추산됐는데, 올 들어 인공지능(AI) 시장이 더욱 팽창하고 반도체 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가치가 더욱 올랐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두산은 최근 수 년 간 반도체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왔다. 지난 2022년에는 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분야에서 국내 1위 기업인 테스나(현 두산테스나)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번 SK실트론 인수를 통해 두산은 반도체 전·후방 사업을 모두 하는 핵심 장비·소재 기업으로 올라설 것으로 관측된다.
앞으로 두산의 반도체 사업은 두산테스나와 ㈜두산의 전자BG(전자비즈니스) 사업부, SK실트론의 '3각 구도'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테스나는 비메모리 반도체 테스트, ㈜두산 전자BG사업부는 반도체 기판용 동박적층판(CCL) 생산, SK실트론은 맞춤형 웨이퍼를 공급하는 구조다.
두산은 2000년대 들어 OB맥주를 비롯한 주류 사업 부문과 코카콜라, 버거킹 등 외식 사업 등을 잇따라 매각하고 기계·중공업을 중심으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지난 2007년에는 미국 건설기계 기업이었던 밥캣(현 두산밥캣)을 인수하기도 했다.
2010년대 들어 글로벌 경기 침체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도 지속적인 사업 구조 재편을 진행했다. 현재 두산의 주력 사업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를 중심으로 한 기계,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퓨얼셀이 주축인 에너지, 두산테스나를 주력으로 하는 반도체·첨단소재 등 3대 축으로 구성된다.
두산은 향후 실트론 웨이퍼 사업이 연평균 7%대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근거로 오는 2031년 실트론의 매출 목표를 약 3조원으로 잡았다.
두산 관계자는 "이번 인수 계약으로 ㈜두산은 미래 성장 동력과 지속가능한 수익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실트론은 상장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정적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두산의 주주가치를 높이는데 더욱 힘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SK그룹 역시 실트론 매각으로 최근 수 년 간 진행해 온 리밸런싱 작업에 속도를 높이고 AI 등 다른 미래 성장 동력에 집중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SK 내부에서는 AI 성장을 내다보고 반도체 사업을 키우는 상황이라 첨단소재 기업인 실트론의 매각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지난해 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두산과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그룹의 리밸런싱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 결국 매각을 최종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