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강서구 로보티즈 본사에서 직원들이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AI 사피엔스'에 충격을 가하자 로봇이 균형을 되찾고 있다./최지희 기자

지난 21일 서울 강서구 마곡 로보티즈 사옥 6층에선 직원들이 휴머노이드 로봇 'AI(인공지능) 사피엔스' 3대를 사방에서 밀치며 흔드는 시험에 한창이었다. 로봇은 휘청이면서도 버텼고, 넘어지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두 발로 섰다. 외부 충격에도 균형을 되찾는 능력을 검증하고 학습 데이터를 쌓는 과정이다. AI 사피엔스는 연내 시장에 나온다. 로보티즈가 이족보행 휴머노이드를 판매하는 건 2015년 이후 11년 만이다.

이날 로보티즈 본사에서 만난 김병수 대표는 "AI가 언어를 다루는 데서 나아가 실제 로봇을 움직이는 단계까지 이렇게 빨리 진화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로봇용 액추에이터를 계속 개발해온 덕분에 남들보다 2~3년 먼저 대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휴머노이드는 관절마다 액추에이터가 들어가는 '액추에이터 덩어리'다. 이 부품이 보행과 균형 제어, 물체 조작 성능을 좌우한다.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가 연내 판매 예정인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AI 사피엔스'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최지희 기자

로보티즈는 애초 휴머노이드를 만들기 위해 액추에이터를 개발한 회사다. 국내외 로봇 대회를 휩쓸던 김 대표는 1999년 회사를 세우고 휴머노이드 개발에 매달렸다. 그러나 시장이 열리지 않자 2015년 개발을 중단하고, 다품종 로봇용 액추에이터 '다이나믹셀'을 세계 연구기관과 로봇 기업에 공급하며 사업을 이어갔다.

멈췄던 휴머노이드 개발에 다시 시동을 건 것은 2024년이다. 과거에는 관절 각도를 수학 모델로 일일이 계산했지만, 이제 AI가 강화학습과 모방학습으로 걷고 균형을 잡거나 물건을 다루는 법을 익힌다.

김 대표는 3년 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로보티즈 액추에이터로 모방학습을 구현하는 모습을 보고 시장 변화를 실감했다고 했다. 그는 "미국 빅테크들과 대화하며 2년 가까이 방향을 잡았다"며 "로봇팔에 카메라를 달아달라는 수준이던 요구가 양팔과 새로운 관절 구조, 로봇핸드로 빠르게 넓어졌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거쳐 지난 4월 이족보행 AI 사피엔스를 공개했다.

로보티즈는 이족보행 휴머노이드에 앞서 바퀴형 로봇과 로봇핸드로 시장 수요를 확인했다. 지난해 내놓은 바퀴형 휴머노이드 'AI 워커'와 다섯 손가락 로봇은 올해 판매 물량이 일찌감치 동났다.

김 대표는 "AI 워커는 수백대가 팔렸는데, 이족보행 AI 사피엔스는 이보다 10배 많은 수천 대 규모로 팔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다리로 서면 사람이 일하는 모든 공간에 투입할 수 있고, 관절에 걸리는 하중이 작아 가격도 AI 워커와 비슷하거나 낮게 맞출 수 있어서다.

로보티즈가 액추에이터 부품 사업에 머물지 않고 완성형 휴머노이드를 다시 만드는 것은 로봇 관절부터 구동 기술까지 묶어 판매하기 위해서다. 완성형 로봇으로 액추에이터 성능을 입증하고, 고객이 원하는 로봇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제어 기술을 함께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김 대표는 "국내 로봇들이 대부분 잘 걷지 못하는 건 AI를 수용하지 못하는 액추에이터를 사다 넣었기 때문"이라며 "그 부품으로 로봇이 제대로 움직이는 모습까지 보여준 전문 업체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액추에이터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은 중국이라고 했다. 지난해 전 세계 휴머노이드 생산량 약 1만3900대 가운데 1만2000여가 중국산이었다. 김 대표는 "가장 큰 위협은 중국 업체들"이라며 "경쟁력을 인정받으려면 결국 로봇용 액추에이터를 중국에 팔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로보티즈가 중국에 판매한 엑추에이터는 올 2분기에 이미 지난해 연간 판매량인 8만개를 넘어섰다.

서울 강서구 마곡 로보티즈 본사 로비에 전시된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똘망'. 로보티즈가 2015년까지 판매한 모델이다./최지희 기자

때문에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정도로 생산능력을 확충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현재 주문의 절반가량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 물량이 중국 업체로 넘어가기 전에 빨리 되찾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로보티즈는 지난해 액추에이터 약 22만개를 생산했고 올해는 생산량을 60~70% 늘리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공장에서는 액추에이터 생산과 로봇 양산, 피지컬 AI 학습 데이터 구축을 함께 추진한다.

로보티즈는 장기적으로 액추에이터 생산능력을 연 300만개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2대 주주인 LG전자는 이 공장에 대한 지분 투자를 검토 중이며, 다른 기업들과도 투자 참여를 논의하고 있다.

예상보다 빨리 열린 시장을 두고 김 대표는 "무명 가수 생활을 하다가 이제 막 무대에 올라가려는 기분이라 좋다기보다는 긴장된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시장 초기에 휴머노이드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 점유율을 확보하고 생태계를 넓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로보티즈는 AI 사피엔스의 설계와 구동 기술을 오픈소스로 푸는 승부수를 던졌다. 개발자들이 처음부터 로보티즈 액추에이터로 휴머노이드를 만들도록 유도하려는 전략이다. 특정 액추에이터에 맞춰 제어 모델과 데이터를 학습하면 개발 도중 다른 부품으로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오픈소스와 우리 액추에이터를 활용하면 학생들도 휴머노이드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한다. 대학 학부생 동아리를 모집해 개발 과제를 맡기고 결과물을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기업마다 자체 로봇을 갖는 시대가 올 것으로 봤다. 그는 "로봇이 일하며 쌓는 작업 데이터가 곧 피지컬 AI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만큼, 기업들이 이를 외부 로봇 업체에 맡기기보다 직접 만드는 쪽을 택할 것"이라고 했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폭스콘이 최근 로보티즈 액추에이터를 샘플용으로 대량 구매한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김 대표는 "장기적으로 로봇 시장은 기계 자체를 파는 게 아니라 인력을 쓰듯 로봇을 빌려주고 로봇이 일한 만큼 비용을 내는 시장이 될 것"이라며 "기업이 원하는 휴머노이드를 액추에이터부터 구동 소프트웨어와 제어 기술까지 맞춰 제공하는 '휴머노이드 솔루션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