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 사업 재편 두 번째 타자인 '여수 1호' 프로젝트의 정부 지원 방안이 공개된 후, 사업 재편 방안을 구상 중인 나머지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여수 1호의 에틸렌 감축량이 대산 1호보다 많지만, 정부 지원 규모는 대산 1호의 3분의 1 정도여서다.

정부는 대산 1호, 여수 1호 기업들의 자구 노력을 감안해 지원 규모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으론 사업 재편안 제출 시점도 고려할 방침이다. 다음 주자인 울산 산단, 여수·대산 2호 기업들은 자구안 마련을 두고 저울질하는 모양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전날 여천NCC(나프타분해설비)·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 4사가 제출한 여수 산단 석유화학 사업 재편 계획서 최종안을 최종 승인했다. 여수 산단에서 처음 제출돼 여수 1호 프로젝트로 불린다.

그래픽=정서희

이번 재편안은 여천NCC 1∼3공장 중 이미 가동이 중단된 3공장 외에 2공장의 추가 가동을 중단하고, 남은 1공장을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과 합쳐 통합 법인을 설립하는 게 골자다. 이에 여천NCC의 에틸렌 생산량은 기존 연 228만톤에서 연 140만톤이 줄어, 88만톤 수준으로 쪼그라든다.

정부는 여수 1호 맞춤형 패키지로 7000억원가량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중 신규 자금 지원 등 금융 지원이 6500억원 이상이다.

앞서 대산 1호가 2조1000억원 이상의 패키지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정도다. 특히 대산 1호는 신규 자금(최대 1조원) 지원과 기존 부채의 영구채(최대 1조원) 전환 등 최대 2조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받아냈다.

여수 1호에서는 기존 대출의 영구채 전환이 빠졌다. 영구채는 만기 없이 원금을 상환하지 않고 이자만 영구적으로 지급하는 채권을 의미한다. 부채가 아니라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돼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장점이 있다.

대산 1호인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 합작 법인인 HD현대케미칼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은 493%였다. 부채 1조원의 영구채 전환, 주주사들의 자금 출자 등이 마무리되면 부채비율은 200%대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천NCC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은 223%로, 대산 1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그래도 높은 수준이다.

원가 절감 부문에서도 대산 1호가 더 나은 혜택을 받았다. 대산 1호 지역은 분산 에너지 특구로 지정돼 기존 한국전력 전기 요금 대비 4~5% 저렴한 요금이 적용된다. 연료용 직도입 액화천연가스(LNG) 투입도 가능하다. 석유화학 공장은 24시간 내내 가동되기에 전기 요금이 이익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반면 여수 1호는 나프타 관세 면제 등 단기적인 세제 혜택을 받는 데 그쳤다.

산업부는 기업들의 자구 노력에 따라 지원 규모를 정했다고 밝혔다. 자구 노력은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이 채권단으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 대주주 사재 출연, 구조조정 등 뼈를 깎는 노력을 얼마나 진행했는지를 의미한다.

즉 대산 1호의 자구 노력이 강력했다는 것이다. 대산 1호 기업인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각각 6000억원씩 총 1조2000억원을 출자했다. 여수 1호의 경우, 여천NCC 주요 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각각 2725억원씩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5450억원을 마련했다.

여수 지역 사회에서는 여수 1호 에틸렌 감산 규모가 대산 1호보다 많은데도 혜택은 훨씬 적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여수 1호인 여천NCC 2·3공장을 폐쇄하면 연 140만톤의 에틸렌이 감축되는 반면 대산 1호의 감산 규모는 연 110만톤 정도여서다. 서영학 여수시장은 여수 1호 사업 재편안을 두고, 지원 규모와 고용 안정 대책에 대해 아쉬움을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석유화학 기업들이 1분기 호실적을 내면서 정부 지원 규모가 적어졌다고 보고 있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단가 하락으로 적자를 지속했으나, 주요 기업들이 1분기 흑자를 내면서 고려 사항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중동 사태로 인한 래깅(lagging·지연) 효과로 롯데케미칼, LG화학 석유화학 사업,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등 주요 기업들은 모두 1분기 흑자를 냈다. 앞서 저렴하게 확보한 나프타 재고로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어 고가에 판매해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연합뉴스

◇국내 에틸렌 1위 LG화학 포함된 여수·대산 2호, 울산 1호, 자구안·제출 시기 '고심'

아직 사업 재편안을 마련하지 못한 울산 산단 기업들과 여수, 대산 산단 후발 주자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정부가 요구하는 충분한 자구 노력을 사업 재편안에 담아 이른 시일 내 제출해야 한다. 설비 감축을 두고 기업 간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엇갈린다.

특히 LG화학이 포함된 여수·대산 2호, 울산 1호의 사업 재편안에 업계 관심이 쏠린다. LG화학은 여수(200만톤), 대산공장(130만톤)을 합쳐 연간 330만톤 이상의 에틸렌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약 26%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LG화학에서 구체적인 사업 재편안이 나와야 정부의 감축 목표치(최대 370만톤)를 맞추는 게 가능하다.

LG화학은 여수 산단에선 GS칼텍스와, 대산 산단에선 한화토탈에너지스와 사업 재편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 관계자는 "지난해 말 정부에 구조조정 방안을 제출했으며, 사업 재편을 두고 다른 기업들과 계속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GS칼텍스, 한화토탈에너지스와 유의미한 조율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GS칼텍스는 정유 사업을 영위해 자체 설비에서 나온 나프타를 석유화학 공정에 투입할 수 있어 원료 조달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다. 본업이 석유화학 사업인 LG화학과 달리 사업 재편 참여 동기가 적다는 것이다.

각 기업의 해외 주주도 변수다. GS칼텍스는 미국 셰브론이, 한화토탈에너지스는 프랑스 토탈에너지스홀딩스가 지분을 각각 50%씩 갖고 있다. 이사회에 해외 기업 측 인사가 참여하고 있어 자산 가치 평가, 합작 법인 설립 등을 두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울산 1호는 내년 초 사업 재편안의 밑그림을 도출한다는 구상이다. 해당 기업인 에쓰오일(S-Oil),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등은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시운전 후 효율성을 따져보고,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사업 재편안 제출 시점도 지원 방안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석유화학 업계의 신속한 구조 조정을 압박하면서 적극적으로 먼저 나서는 기업에는 확실한 혜택을 주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정부가 무임승차 기업에 강력한 대응을 예고한 만큼, 사업 재편 참여는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석유화학 기업들이 계속 어려운 협의를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고 있다. 사업 재편안 제출이 조금 늦어질 순 있지만, 안 할 순 없는 상황이다"라며 "다만 아예 협의 의지가 없다면 당초 가이드라인대로 패널티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