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석유화학 단지인 대산, 여수 산단의 사업 재편안이 승인된 가운데 마지막 퍼즐로 꼽히는 울산 산단의 사업 재편안은 내년쯤 윤곽이 그려질 전망이다.

울산 산단의 최대 변수인 에쓰오일(S-Oil)의 샤힌 프로젝트가 시운전을 통해 타사 설비 대비 얼마나 효율적인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정이 필요해서다. 업계에서는 수치를 확인한 후에야 사업 재편 대상 기업인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과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22일 산업통상부가 여수 산단 석유화학 사업 재편 계획서 최종안을 승인하면서 석유화학 업계의 시선은 마지막 핵심지인 울산으로 쏠리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S-OIL 샤힌 프로젝트 공사 현장. /S-OIL 제공

울산 산단에 있는 에쓰오일,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 등 3사는 NCC(나프타분해설비) 감축 등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사업 재편안도 내놓지 못한 상태다.

울산 산단 기업 관계자는 "계속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울산은 여수, 대산과 달리 수급도 맞고, 노후 설비 비율도 적다. 정부도 이 차이를 알고 있다. 지역적 특성에 맞게 사업 재편을 구상하며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산단의 가장 큰 변수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다. 약 9조원이 투입된 샤힌 프로젝트는 최근 기계적 완공을 마치고, 현재 설비 검증을 진행 중이다. 검증을 마친 후 시운전을 시작해 내년 초 상업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완공 시 연간 에틸렌 180만톤, 프로필렌 77만톤 등의 생산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샤힌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울산 산단의 에틸렌 생산은 크게 늘어난다. 대산, 여수 산단 내 기업들이 NCC 설비 폐쇄, 통합 과정을 통해 에틸렌 생산을 줄이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울산 산단이 감축 논의에서 빠진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울산 산단의 사업 재편안 밑그림은 이르면 내년 초 그려질 전망이다. 샤힌 프로젝트가 상업 가동된 후 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 원료를 뽑아내는 수율이 어느 정도인지, 가격 경쟁력이 얼마나 좋은지 구체적인 수치가 나와야 다른 기업들과 구조조정 논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어서다.

전통적인 석유화학 제품 생산 방식은 원유를 증류해 기초 원료인 나프타를 분리한 후, 2차 다운스트림을 거쳐야 한다. 반면 샤힌 프로젝트에 적용된 TC2C는 원유를 증류하는 대신 신규 분리 및 촉매 기술을 적용해 정제하는 게 특징이다. 즉 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 원료를 뽑아내는 구조다.

정부는 샤힌 프로젝트 가동 전에 선제적으로 공급 과잉 충격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내년 샤힌 프로젝트가 상업 가동되면, 석유화학 제품 공급 과잉 상태가 된다. 이전에 사업 재편 계획을 미리 준비하고, 가동 시기에 맞춰 이행하기 위해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산단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견조한 실적을 내는 점도 사업 재편이 늦어지는 요소로 꼽힌다. 석유화학 설비 비율이 커 중국발 공급 과잉의 직격탄을 맞은 여수·대산 산단과 달리 울산 기업들은 NCC 규모가 크지 않고, 설비 노후화 비율이 낮아서다.

에쓰오일, SK지오센트릭은 정유·석유화학 설비를 동시에 가동하는 수직 계열화를 갖춘 게 장점이다. 원유를 정제해 나프타를 뽑아내고, 바로 화학 제품을 만드는 구조여서 외부에서 나프타를 사 와야 하는 화학 기업들보다 원가 경쟁력이 높다. 대한유화는 이차전지 분리막용 폴리에틸렌(PE) 등 특수 소재 중심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중동 사태 장기화도 변수다. 지난 2월 말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나프타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사업 재편이 지연됐다. 셧다운 위기설까지 나올 정도로 원료·수급 안정이 우선 순위였다. 정부는 일단 단기적인 원유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중동 정세 불안 장기화에 대비하며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서 여수 1호 사업재편승인기업 CEO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산업통상부 제공

한편 이날 산업통상부는 여천NCC·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 4사가 제출한 여수 산단 석유화학 사업 재편 계획서 최종안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발표한 대산 1호 사업 재편 프로젝트(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에 이은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두 번째 사업 재편 승인 사례다.

정부 주도로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사업 재편을 진행하는 이유는 중국발(發) 공급 과잉 여파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출혈 경쟁을 멈추고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체질을 바꿀 수 있도록 정부가 교통정리에 나선 셈이다.

이날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석유화학 산업 구조 개편이 성공하려면 무임승차 없이 모든 산단이 참여해야 한다"며 "대산과 여수에 이어 울산 지역의 사업 재편 논의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