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건조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이 운행하고 있다./한화오션 제공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발주량이 57년 만에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한화오션이 척당 2000억원에 육박하는 고선가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신규 발주 물량의 약 90%를 중국 조선소가 가져간 가운데, 한화오션은 시장 상단의 선가로 VLCC를 연속 수주해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웃돈 줘도 4년 대기

22일 업계에 따르면, JP모건자산운용의 해운 투자 펀드가 지난 14일 한화오션에 발주한 32만DWT급 VLCC 2척의 선가는 척당 약 1억3100만달러(약 1972억원)다. 이는 최근 VLCC 신조 시장에서 형성된 최고 수준의 가격대다. 선박은 3년 8개월 뒤인 2030년 3월 말까지 인도될 예정이다.

한화오션은 지난달 팬오션으로부터 수주한 30만DWT급 VLCC 4척도 척당 약 1억3100만달러에 계약했다. 이들 선박의 인도 기한은 2030년 2월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주요 조선소의 독(dock·선박 건조장)이 차면서 VLCC를 인도받으려면 4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지만 선가는 계속 오르는 추세"라며 "조금이라도 빠른 건조 슬롯을 확보하기 위해 웃돈을 지급하려는 선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은 기존에 건조한 선형을 다시 활용하는 반복 설계 방식으로 VLCC를 연속 수주하고 있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선박을 이어 지으면 설계와 자재 조달, 생산 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작업 숙련도를 높일 수 있다. 고선가에 반복 건조 효과가 더해지면 수익성은 그만큼 더 커지는 구조다.

◇운임 최고가 찍자 너도나도 발주

전 세계 VLCC 발주도 유례없이 빠르게 늘고 있다. 선박중개업체 어피니티에 따르면 올해 VLCC 발주량은 168척으로, 상반기에 이미 종전 최대였던 1969년의 110척을 넘어섰다. 연간 발주량이 100척을 넘긴 것은 2006년(103척) 이후 20년 만이다.

발주 경쟁에 불을 붙인 건 중동 정세 불안과 운임 급등이다. 지난 3월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중동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VLCC의 하루 운임은 한때 사상 최고인 42만3736달러(약 6억3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기준 1년 정기용선료도 하루 약 10만2000달러(약 1억5000만원)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뱃삯이 오르자 새 선박을 확보하려는 선주들의 주문이 몰렸다.

쓸 수 있는 선박이 줄어든 것도 발주를 부추겼다. 이란과 러시아산 원유를 운송하는 제재 대상 선박이 정상적인 용선 시장에서 이탈했고, 중동산 원유를 대체해 미국과 브라질 등 먼 지역에서 아시아로 원유를 실어 나르는 항로가 늘면서 같은 물량을 옮기는 데 더 많은 선박이 필요해졌다. 원유 운반선 선복량의 약 22%가 선령 20년을 넘어서면서 노후선 교체 수요도 발주를 밀어 올리고 있다.

◇中, 저가 앞세워 올해 89% 싹쓸이

다만 올해 발주 붐의 최대 수혜는 물량 기준으로 중국 조선소가 차지했다. 해운시장 분석업체 MSI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체결된 VLCC 계약의 약 89%가 중국 조선소로 향했다. 낮은 가격과 생산설비 확장을 앞세운 결과다.

최근 중국 조선소의 일부 VLCC 계약 가격은 척당 약 1억2200만~1억2300만달러(약 1800억~1820억원)로, 한화오션의 최신 계약보다 800만~900만달러(약 118억~133억원)가량 낮다. JP모건 계열 펀드도 지난 4월 중국 다롄조선에 30만7000DWT급 VLCC 2척을 척당 약 1억2300만달러(약 1820억원)에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발주처가 한국 조선소에 더 높은 값을 치른 것이다.

한화오션은 저가 경쟁 대신 건조 실적과 연료 효율·친환경 사양으로 시장 상단의 선가를 받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운항 중인 VLCC 1233척 가운데 한화오션이 건조한 선박은 228척으로, 단일 조선소 기준 가장 많다. 전 세계에서 운항하는 VLCC 5척 중 약 1척을 한화오션이 건조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발주가 2~3년 뒤 공급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지난달 기준 VLCC 발주 잔량은 현재 운항 선대의 약 35%로, 운항 선박 3척당 1척꼴로 새 선박이 지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비율은 2023년 2%에서 3년 만에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에 계약된 선박의 약 83%는 2028~2029년에 인도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정세 불안과 노후선 교체 수요를 고려하면 당분간 VLCC 발주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올해 상반기 발주만으로 2028년 예정 인도량이 기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만큼, 높은 운임으로 노후선 폐선까지 지연되면 2028년부터 공급 과잉과 운임 하락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