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재점화한데 이어 예멘의 친이란 성향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언하면서 국제유가 선물 가격이 6월 이후 처음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미국과 이란 갈등이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미국 등 주요국의 원유 재고량이 줄어든 상태라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은 열려있다. 이에 석유 최고가격제 출구 전략을 준비 중이던 정부가 당분간 석유 최고가격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2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20일(현지 시각)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장중 한때 91.42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선 것은 6월 11일 이후 39일만이다. 이날 브렌트유 선물은 89.22달러에 거래를 마쳤으나, 전날보다 1.27% 올랐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전날보다 2.85% 상승한 배럴당 84.8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제유가 선물 가격 상승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해상 운송로를 지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결과다. 후티 반군은 현지 시각으로 20일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해상 봉쇄를 선언하며 즉각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후티는 해상 봉쇄의 구체적인 방식을 밝히진 않았으나, 홍해에서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을 막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후티 반군은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홍해 남부와 아덴만을 연결하는 바르엘만데브 해협 인근 해역에서 선박을 공격한 바 있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중동과 아시아 국가가 석유, 가스 및 기타 원자재를 수출입하는 중요한 통로다. 후티 반군이 2023년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기 전까지 전 세계 해상 무역량의 약 10%가 해당 해협을 통과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옥스퍼드대학교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는 해상 무역량은 약 3%로 줄었다.
문제는 후티 반군의 공격이 현실화할 경우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시작된 원유 수출 우회 통로마저 막힐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이란의 대립 이후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홍해에 접한 얀부항을 통해 원유를 우회 수출했다. 지난 5월 기준 사우디아라비아가 얀부항을 통해 수출한 원유는 하루 365만배럴이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발발 이전 사우디아라비아의 일일 원유 수출량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외신과 글로벌투자은행은 후티 반군의 공격 위협으로 향후 국제유가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운송 차질이 지속되면 올해 4분기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와 페르시아만 원유 수출량이 전쟁 이전 수준의 45% 이하로 감소한 것이 유가를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페르시아만의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홍해를 통해 아시아 고객에게 원유를 수출하려면 선박은 후티 반군이 공격할 수 있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며 "안전상의 위험으로 인해 유조선이 해당 항로를 이용할 수 없게 되면 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당분간 유지하는 쪽에 무게를 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오는 24일 8차 석유 최고가격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지난 6월 27일부터 적용할 7차 석유 최고가격을 리터당 150원씩 인하하면서 최고가격제 연착륙 및 종료를 검토했다. 하지만 홍해마저 막힐 수 있는 위기라 최고가격제를 당분간 연장·유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에서도 석유 최고가격제 유지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 홍해가 막히진 않았으나, 만약을 대비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원유를 도입하는 등 비상 계획을 준비 중"이라며 "석유 최고가격제는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