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 한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석유운반선 등 일반 상선 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고난도 첨단 선박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키우는 것이다.
LNG 운반선은 중국의 신규 선박 건조 싹쓸이 속에 한국이 아직까지 우위를 유지하는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종이다. 그러나 중국의 LNG 운반선 수주 점유율이 2021년 10%대에서 최근 30%대로 높아지며 국내 조선업계에선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2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국영석유기업(애드녹·ADNOC)은 최근 9억달러(약 1조3400억원) 규모의 LNG 운반선 4척을 중국 조선소에 발주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이 사업을 한국이 수주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애드녹 측은 중국과 계약 직전 한국을 방문해 조선 분야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지난 8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 UAE 산업첨단기술부 장관 겸 애드녹 최고경영자(CEO)와 비공개로 만났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약 반 년 만에 다시 만나 에너지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 자베르 CEO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도 면담하며 원유 안보 협력체계 구축과 원유·가스 저장 및 운송 설비 확충 등의 에너지 사업을 논의했다.
그러나 알 자베르 CEO는 직후 중국으로 건너가 10일 LNG 운반선 4척 건조를 발주하는 계약식에 참석했다. 애드녹의 해운·물류 자회사인 애드녹 L&S가 중국 국영 중국선박집단(CSSC) 산하 장난조선에 일감을 맡겼다.
발주한 선박은 17만5000㎥(LNG 화물창 용적)급 대형 LNG 운반선이다. 총 계약액은 9억달러로, 척당 가격은 2억2500만달러 수준이다. 선박은 2029년 인도될 예정이다.
계약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조선업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 선박들이 중국의 LNG 수입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중국 조선소들이 건조 경험을 쌓으며 한국과의 격차를 좁혀 가는 흐름이 경계된다는 것이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 조선업계에 불편한 전개가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 정 애널리스트는 "품질 측면에서 한국이 아직 우위에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며 "중국이 계속해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이렇게 경험을 쌓아 (한국을) 따라잡게 될 것이란 점에서 점점 더 불편해지고 있다"고 했다.
애드녹은 원유·천연가스 탐사·생산·정제·트레이딩을 주력으로 하는 UAE 국영 에너지 기업이다. 원유 의존에서 탈피해 전 세계 LNG 수요 증가를 겨냥해 LNG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애드녹은 현재 건설 중인 루와이스 LNG 프로젝트가 2028년 가동을 시작하면 LNG 생산능력을 연간 580만톤(t)에서 약 1500만t으로 두 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2035년 연산 4700만t의 LNG를 취급하는 것이 이 회사의 목표다.
애드녹은 LNG 수출 확대에 맞춰 운반용 선대를 확장 중이다. 이번에 신규 주문한 4척을 포함해 애드녹이 2022년부터 발주한 LNG 운반선은 총 18척이다.
애드녹은 2022년 장난조선에 LNG 운반선 6척을 발주한 후 2024년엔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에 각각 4척을 주문했다. 이번에 다시 장난조선을 택하면서 장난조선은 애드녹으로부터 총 10척의 수주 실적을 확보했다.
조선업계에선 해외 선주들이 중국 조선소로 LNG 운반선 발주를 늘리는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의 LNG 운반선 수주 점유율은 2021년 약 12%에서 최근 30%대로 높아진 상태다.
중국 기업 중에는 현재 CSSC 산하 후둥중화조선과 장난조선이 중국 LNG 운반선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후둥중화조선은 중국에서 첫 LNG 운반선을 만든 후 카타르 특수에 힘입어 한국 조선사들과 경쟁하는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후발 주자인 장난조선은 UAE 애드녹을 비롯해 그리스 TMF카디프가스 등 다양한 지역의 선주를 확보하면서 LNG 운반선 분야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LNG 운반선은 화물창(천연가스를 극저온의 액체 상태로 저장·운반하는 설비) 등 기술 장벽이 높아 한국이 기술 면에서 우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최근엔 중국 조선소들이 많이 만들어 보면서 실력과 신뢰도를 쌓았다"며 "(중국의) 품질이 대략 맞춰지면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류민철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중국 조선사들은 LNG 화물창 라이선스를 가진 프랑스 GTT나 감리를 맡는 국제 선급 등을 통해 기술력을 높여 왔다"며 "원가가 점점 한국에 불리해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를 대비해 자동화 등 첨단 기술 개발에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