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을 위해 추가로 원전을 더 짓겠다고 밝히면서 신규 부지에 관심이 쏠린다. 당초 정부는 전남 영광군 한빛본부 기존 부지에 신규 원전 2기를 짓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영광군이 신규 원전 유치에 반대해 쉽지 않은 상황이라서다.
전문가들은 현재 신규 원전 입지 선정 방식인 지방자치단체 공모 방식으론 동해안 라인에 원전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동해안 지역이 호남 지역보다 원전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편이라서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팹(Fabrication·반도체 전용공장)이 들어서는 곳에 전력기반시설도 같이 지을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일 정부관계자들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내달로 예정된 대통령 업무보고를 앞두고 주요 정책 과제 정리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용수 공급 대책이 우선순위 과제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호남 지역에 80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기를 조성할 계획이다. 반도체 생산에는 대규모 용수와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투자 계획 성패가 기반시설 확보에 달려 있는 만큼 업계는 정부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신규 원전을 포함하겠다고 공식화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13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전문가 의견 수렴과 대국민 공론화를 거쳐 신규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원전을 어디에 짓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기존 원전부지를 활용해 신규 원전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남 영광군 한빛본부, 울산 울주군 새울본부에 각각 2기씩 지을 면적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김 장관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전남 영광, 울산 울주에 각 2기씩 총 4기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보통 원전 건설에는 약 15년이 걸린다. 한국수력원자력의 부지 공모를 시작으로 부지평가·선정 과정, 지역 의회 찬성률, 반경 5km 이내 주민 여론조사 등에 수개월이 소요된다. 이어 건설 인허가에 약 2~3년, 실제 건설 및 시운전에 약 10~14년이 소요된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정부 계획과 달리 전남 영광군에 신규 원전을 짓는 건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다. 전남 영광군이 환경 문제를 이유로 지난 6월 정부의 신규 원전 부지 선정 당시 원전 유치 신청을 하지 않은 곳이라서다. 유치를 희망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은 지방의회 동의서, 주민 수용성 확보 계획 등을 포함한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직접 공모하지 않으면, 신규 원전 건설은 첫 단계부터 어그러진다.
호남 지역 내 새로운 원전 부지도 대안으로 론된다. 과거 한수원은 자체 조사를 통해 진도, 해남, 장흥, 고흥, 여수 등 9개 지역이 원전 입지로 적합하다는 조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주민 수용성, 인허가 절차 등은 배제하고 입지 자체만 조사한 내용으로, 실제 원전 건설 가능성은 미지수다.
가장 큰 걸림돌인 주민 수용성을 고려하면 울산 울주군에 있는 새울본부에 2기를 지을 가능성도 있다. 본부 내 인재개발원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울주군은 신규 원전 부지로 자율 유치 신청을 진행했으나, 최종 후보지 선정에서 탈락했다. 울주군이 신규 원전 유치 재도전을 시사한 만큼, 주민 반발도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이번에 각 지방자치단체가 원전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을 보고, 주민 수용성 단계가 점차 줄어들 것으로 봤다. 새울본부 부지에 기존 원전 설계로 검토 기간까지 줄인다면, 원전 공기를 7년으로 줄이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호남권에 반도체 팹을 짓는 만큼 전력기반시설도 같은 곳에 지을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공모하는 의사결정 구조로는 동해안 라인을 따라 원전이 계속 지어질 가능성이 커서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지자체 유치로 원전을 짓는다면,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이 다르다는 형평성 문제가 과거보다 크게 부각될 수 있다"라면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