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경상남도 사천시에 있는 한국항공우주(047810)(KAI) 우주센터 전자파 환경 시험실. 성인 손바닥을 넘어서는 두께의 육중한 철문을 열자, 사방이 뾰족한 흡음재로 채워진 공간 속에서 역(逆)사다리꼴 모양의 구릿빛 위성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이 두 팔로 안으면 절반쯤 감싸질 만한, 작지만 묵직한 크기의 이 위성은 막바지 점검을 받는 중이었다.

연구진은 이곳에서 위성을 실제 우주에서처럼 구동하면서 위성 내 수많은 전자기기가 상호 간섭 없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한다. 이 과정에서 수백㎞ 사거리의 강력한 레이더 신호를 발산하는데, 신호가 벽에 부딪혀 위성으로 돌아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방에 흡음재를 촘촘히 채워둔 것이다.

KAI 관계자는 "이 시험을 10영업일만에 마치고, 조립부터 최종 시험까지 단 10개월이면 충분한 체계를 구축했다"며 "위성체 조립과 시험 간 병목을 제거한 고효율 위성 생산 인프라"라고 말했다.

한국항공우주(KAI) 사천 우주센터에서 전자파 환경 시험을 받고 있는 위성./KAI 제공

글로벌 방산·우주 업계가 초소형 위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저렴하고 빠른 제작으로 수십, 수백 기의 군집 위성을 띄우는 '촘촘한 우주 그물망'이 핵심 안보 경쟁력으로 부상하면서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던 중대형 위성과 달리 접근 장벽이 낮아 민간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시장 성장을 가속하는 요인이다. KAI는 그간 축적한 중대형 위성 노하우를 접목해 가격 경쟁력에 고성능까지 갖춘 초소형 위성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 중대형 위성 DNA 심었다… 몸집 줄이고 고성능 확보

KAI의 초소형 위성 경쟁력은 '역발상'에서 시작된다. 스페이스X를 비롯한 대다수 우주 기업들은 100㎏급 초소형 위성으로 시작해 500~1000㎏급 중대형 위성으로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하지만 KAI는 1990년대부터 다져온 중대형 위성 기술력을 초소형 위성으로 확장하고 있다. KAI 관계자는 "중대형 위성 개발 과정을 초소형 위성에 이식해 일관된 품질의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체계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초소형 위성의 핵심은 영상을 짧은 주기 동안 최대한 많이 촬영하고, 그 영상과 촬영된 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지상에 전송하는 것이다. 위성 크기가 커야 성능도 높일 수 있는데, 초소형 위성은 무게와 비용 제약 탓에 성능이 다소 낮은 물리적 구성품을 쓸 수밖에 없다. KAI는 이 한계를 중대형 위성에서 검증된 고정밀 제어 로직(소프트웨어)을 그대로 심어 극복했다.

실제 촬영 위치 정보의 경우, KAI는 고객사가 제시한 기준보다 40%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해상도에서도 글로벌 초소형 위성 강자로 꼽히는 미국 엄브라(Umbra)나 핀란드 아이스아이(ICEYE)가 보유한 0.3m 이하급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지상 자동차 종류까지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다. KAI 관계자는 "여기에 영상 획득 능력 면에서는 글로벌 경쟁사들을 오히려 압도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 1300억 '통합 생산' 인프라 구축… '원가 100분의 1' 車 부품 적용

성능 다음 무기는 생산 경쟁력이다. 이를 위해 KAI는 지난 2020년 사천 우주센터에 1300억원을 투입해 민간 최대 규모의 우주 인프라를 구축했다. 위성의 설계부터 제작, 조립, 시험, 양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한곳에서 수행하는 '원 사이트 원 스톱(One-Site, One-Stop)' 통합 생산 체계다. 과거 각종 환경 시험을 위해 외부 시설로 위성을 옮기고 가져오는 과정마다 최대 2주씩 소요되던 고질적인 병목 현상을 완전히 걷어냈다.

부품 원가를 낮춘 방법도 기발하다. 통상 우주 환경에 적합하다는 인증을 받은 제품은 볼트 하나 가격이 수십만원에 달한다. KAI는 이를 대체하기 위해 자동차용 부품과 기성품을 전격 도입했다. 자동차용 부품 역시 가혹한 환경을 견디는 데다, 내구 수명이 10년 이상으로 길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우주 전용 부품 대비 최소 10분의 1에서 최대 100분의 1 수준이다.

KAI 관계자는 "위성 특성상 한 번 궤도에 진입하면 수리가 불가능해 중대형 위성은 최고 등급의 부품만 사용하며 보수적으로 설계했다"며 "반면 초소형 위성은 운용 수명이 3년으로 상대적으로 짧은 만큼, 부품 등급을 유연하게 낮추고 기성품을 적극 활용해 가성비를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부족한 성능은 소프트웨어 기술력으로 상쇄한다는 방침이다.

위성 사용 목적에 따라 안테나나 카메라 등 탑재체만 갈아 끼우면 되는 '표준 플랫폼'을 적용한 것도 가격 절감 노력의 일환이다. KAI 관계자는 "디지털 일안반사식(DSLR) 카메라의 바디(몸체)는 계속 그대로 두고 렌즈만 바꿔 끼우는 식으로, 차세대 중형 위성 사업에서 사용되던 개념"이라며 "표준화된 틀이 있는 만큼 개발 일정과 비용을 확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KAI 사천 우주센터 내 전자파환경 시험실에서 관련 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연구원들./KAI 제공

◇ 8월 1.4조 정부 수주전, 한화와 경쟁… 2030년대 220기 생산 목표

당장 KAI 우주센터의 시계는 오는 8월 시작될 정부의 '민군 겸용 초소형 위성체계 개발 사업'에 맞춰져 있다. 2030년까지 초소형 합성개구레이다(SAR) 위성 수십기를 동시에 공급하는, 총 1조4223억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30년간 국내 위성 사업을 주도해 온 KAI와 레이다 등 탑재체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는 한화시스템(272210)이 치열한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국내 방산 기업들이 초소형 위성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폭발적인 시장 성장세 때문이다. 초소형 위성은 100억~200억원대로 가격이 중대형 위성 대비 저렴해 민군 모두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100㎏ 이하 전 세계 초소형 위성 시장 규모가 2024년 39억9840만달러(약 5조9000억원)에서 2030년 139억5150만달러(약 20조7000억원)로 연평균 22.8%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KAI 관계자는 "가격 부담이 내려가면서 다양한 기관에서 제작 요청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KAI는 이번 수주전을 발판 삼아 미래 우주 비즈니스로 영토를 빠르게 확장할 계획이다. 우선 2030년대에 초소형 위성 220기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한다. 국내외 관련 기업들과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와 같은 저궤도 위성 통신망 사업 진출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전역에 끊김 없는 인터넷을 제공하려면 최소 220기를 군집 형태로 띄워야 한다는 계산이다. 이에 더해 위성 영상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대형 건설 현장이나 골프장처럼 넓은 사업장을 관리하는 데이터 서비스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국내 포트폴리오를 발판 삼아 해외 수출도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위성 본체와 탑재체 등을 한 번에 묶어 '턴키(일괄 공급) 설루션'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AI 완제기와 패키지로 수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KAI 관계자는 "국가 주도 사업을 통해 공정 노하우를 축적했고,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했다"며 "항공기 수출로 다져 놓은 글로벌 방산 네트워크는 KAI의 강력한 수출 창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