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최대 걸림돌로 꼽히는 전력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수력원자력이 거대한 물 배터리로 불리는 양수발전 개발에 속도를 낸다. 태양광 발전 설비 급증으로 전력망 포화 문제가 한계치에 다다르자 우선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하고, 중장기적으론 양수발전을 활용해 화재 위험이 있는 ESS 단점을 보완한다는 구상이다.

양수 발전은 전력이 남는 시간에는 전기를 이용해 아래쪽 저수지의 물을 위쪽으로 끌어올렸다가 전력이 필요할 때 물을 떨어뜨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을 뜻한다. 전력 수급이 흔들릴 때 즉각 전력 공급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이에 ESS(에너지 저장 장치)에 빗대 WESS(Water ESS), 즉 '물 배터리'라 부르기도 한다.

양수발전 개념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 24시간 도는 반도체 공장… 태양광 빈자리 '물 배터리'로 채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이달 초 '재생e 밀집지역 양수발전 사전타당성조사 용역' 입찰 공고를 내고, 호남 지역에 200메가와트(MW) 이상의 중규모 양수발전소 건설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르면 다음 달 초 관련 용역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호남 지역에서 양수발전 건설이 급물살을 타는 것은 '3대 메가 프로젝트' 때문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6.3기가와트(GW)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에 데이터센터까지 더하면 막대한 규모의 전력이 필요하다.

호남은 재생에너지, 원전 등 발전력이 풍부해 3~5GW가량의 전력이 남아돌고 있지만 예상 수요를 충당하기엔 부족한 상태다. 특히 태양광 발전은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 특정 시간에만 전기를 생산해 간헐성 문제가 있다. 반도체 공장, 데이터센터는 24시간 내내 가동돼야 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다.

호남은 태양광 발전 설비 급증으로 송배전망 포화, 계통 접속 지연 문제가 빈번하다. 전기를 생산하는 양이 크게 늘어난 반면, 이를 실어 나를 전력망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전력 수요가 적은 봄·가을철 낮 시간대에는 전력망 과부하를 막기 위해 발전기를 강제로 끄는 '출력 제어' 조치가 자주 발생한다.

양수발전은 재생에너지 간헐성 문제를 보완할 '전력 계통 안정화 장치'로 부각되고 있다. 낮 시간 태양광이 과잉 생산한 전력을 흡수해 상부댐에 에너지(물)를 저장하고, 전력 수급이 불안할 때 바로 물을 떨어트려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서다.

실제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지난해 7개 양수발전소의 기동(정지 상태에서 발전 가능 상태로 전환) 횟수는 총 9947회로 집계됐다. 즉 긴급한 상황에서 1만번 가까이 물을 떨어트려 전기를 생산했다는 뜻이다.

◇ ESS 화재 위험 보완해야…기존 댐 활용해 공기·비용 '뚝'

통상 양수발전소는 상부댐과 하부댐 두 개를 지어야 해 건설 기간이 10년 정도로 길고, 환경 훼손 논란도 뒤따른다. 쉽고 저렴하게 ESS를 쌓아 전력을 저장할 수도 있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공기가 길어지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양수발전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ESS의 치명적인 단점인 화재 가능성 때문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500MW 규모를 구축할 때 양수발전 건설비는 1조5000억원 정도 들지만, ESS는 1조원이면 가능해 ESS가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면서도 "1MW 용량 배터리가 컨테이너 한 개 크기여서 500MW를 구축하려면 컨테이너 500개를 야적해야 하는 심각한 부지 및 수용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ESS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큰 문제가 된다"며 "배터리만 저장 장치로 쓰는 나라는 많지 않다. ESS와 양수발전이 절반씩 역할을 분담하는 게 이상적이다"고 말했다.

양수발전 건설 방식으로 호남 지역 주요 댐들을 '하부댐(물길)'으로 활용하고, 주변의 높은 산지에 '상부댐'만 추가하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검토된다. 비용, 공사 기간, 환경 훼손 부담 등을 모두 줄일 수 있어서다.

신규 양수발전 입지로는 화순(동복댐), 장흥(장흥댐), 보성(보성강댐), 나주(나주댐) 등이 거론된다. 다만 최근 서남권 반도체 산단 용수 공급 계획과 얽혀 복합적인 인프라 재설계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댐을 양수발전, 용수 공급 등 복합적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청평 양수발전소는 청평댐을 하부 저수지로 활용해 수도권에 용수를 공급하는 기능을 병행하고 있다. 상부댐에 물을 더 많이 저장해 두었다가 물이 부족할 때 하부댐으로 흘려보내기도 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재생에너지가 많은 호남 지역 대상으로 매년 신규 부지 검토를 해왔다"며 "정확한 후보 부지는 용역 결과가 나와야 공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예상 가동 시점이 2035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은 ESS 활용도가 더 크다. 반도체 클러스터 내 반도체 팹(Fab·제조 공장)이 순차적으로 들어서기에 후순위 팹 가동부터는 양수발전이 전력 공급에 기여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