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최고기온이 36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산업 현장의 작업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올해 제철소에는 인공지능(AI)으로 얼음물과 휴게용 텐트를 신청하는 시스템이 도입됐고, 조선소는 체감온도와 관계없이 추가 휴식 시간을 주기 시작했다. 정부는 폭염으로 공공 건설공사가 멈추면 공사 기간을 늘리고, 공사가 늦어진 책임도 묻지 않기로 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는 올여름부터 AI가 폭염 물품을 챙긴다. 이전까지는 부서별로 필요한 물품을 정해진 양식에 맞춰 담당자에게 메일로 보내야 해 수량이나 배송 장소를 바꾸기 어려웠고, 신청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도 알기 힘들었다. 이제는 얼음물과 아이스박스, 휴게용 텐트 등 물품과 수량, 날짜, 배송 장소를 항목별로 골라 넣으면 접수부터 승인, 배송 완료까지 단계마다 자동으로 알림이 온다. 생수도 정수와 얼음물 중 선택할 수 있다.
1500도 고로와 가열로 주변은 설비 복사열에 두꺼운 방열복까지 겹쳐 작업자 체온이 빠르게 오르는 곳이다. 포스코는 공장별로 실측한 체감온도가 31도를 넘으면 50분 작업 후 10분을 쉬고, 35도 이상에서는 옥외 작업을 멈추거나 시간을 조정한다. 현대제철은 냉장고와 혈압계, 자동심장충격기를 갖춘 버스를 현장으로 보내고, 작업자의 체온과 혈압을 매일 확인한다.
조선소에서는 온도를 따지지 않고 쉬는 시간부터 늘렸다. 한화오션은 조선업계에서 처음으로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체감온도와 관계없이 오전과 오후에 10분씩 추가 휴식 시간을 준다. 노사가 지난 2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합의한 내용이다. 햇볕에 달궈진 선박 블록 밖에서는 복사열을, 환기가 어려운 선실 안에서는 용접열을 견뎌야 하는 현장 특성을 고려했다.
거제 조선소에는 약 150m 간격으로 제빙기와 정수기가 놓였고, 폭염에 취약한 안벽 작업장에는 매일 300개 넘는 얼음 생수가 배달된다. 야외에는 미세한 물안개로 체온을 낮추는 쿨링포그(안개형 냉각기)를 새로 설치했고, 외국인 작업자가 늘어난 만큼 온열질환 안내문은 18개 언어로 만들었다.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는 '찾아가는 화채차'가 등장했다. 오는 9월 초까지 임원과 부서장이 오후 3시 휴식 시간에 현장 작업자들에게 과일화채 4만4000그릇을 나눠준다. 작업장과 건조 중인 선박 안팎에는 휴게실과 이동식 버스형 쉼터 등 270여곳을 운영하고, 8월 말까지 점심시간도 30분 늘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소는 겨울보다 여름 작업이 더 힘들어 매년 폭염 대책을 강화하고 있다"며 "현장 근로자들이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현장 곳곳에 휴게시설을 늘리고 제빙기 등 냉방·보랭 설비를 추가했다"고 말했다.
고온·고압 설비가 24시간 돌아가는 석유화학 공장은 폭염이 심해도 공정을 곧바로 멈추기 어렵고, 작업자들은 배관과 탱크 사이를 순찰할 때도 난연 작업복을 벗을 수 없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5월부터 고령자 등 온열질환 민감 군을 사전에 분류해 집중 관찰하고, 전문 간호인력이 상주하는 건강관리실을 운영한다. 체감온도 31도 이상이면 작업 시간대를 바꾼다. SK인천석유화학 협력사 현장에는 인천시와 고용노동부 지원으로 전문 안전 감시원인 '세이프티 키맨' 6명이 투입됐고, 근로자들은 혹서기 물품과 건강검진을 지원받는다.
건설 현장에서는 5분마다 온도를 체크한다. 롯데건설은 이달부터 전국 80개 현장에서 온도와 습도를 5분 간격으로 측정하는 사물인터넷(IoT) 장비를 가동했다. 위험 단계가 감지되면 본사와 현장에 자동으로 경고가 가고, 작업자는 QR코드를 찍어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체감온도와 대응 요령을 확인한다. 삼성물산도 IoT로 현장 체감온도를 실시간 파악하며 오후 2~5시 고위험 작업을 최소화한다.
폭염에 공사를 멈춰도 시공사가 일정 지연 책임을 떠안지 않게 됐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13일 폭염이나 호우로 작업이 현저히 어려운 공공공사는 발주기관이 일시 중지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작업을 멈춘 기간은 불가항력으로 인정해 공사 기간을 늘리고, 계약 금액을 조정해 추가 비용을 보전한다. 공사를 계속했더라도 폭염으로 준공이 늦어졌다면 지체상금을 물리지 않는다. 발주기관 눈치를 보며 무리하게 공사 기간을 맞춰온 관행을 바꾸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