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휴전이 깨지며 국제 유가가 다시 급등하면서 정부가 석유 최고 가격제 종료 시점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정부는 중동 전쟁 발발 후 지난 3월부터 석유제품 판매 가격에 상한을 두는 최고 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종전 협상 진전에 따라 국제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서자 최고 가격제 종료를 염두에 두고 지난달 7차 최고 가격을 인하했다. 그러나 전쟁이 재개되며 국제 유가 변동성이 커지며 중단 시점 검토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우선 정부는 '기간 연장'으로 가닥을 잡았다.

최고 가격제 시행에 따른 정유사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 주기로 한 방침도 최근 검찰의 정유사 담합 수사로 암초를 만났다. 정부와 정유업계의 손실 보전 규모 산정을 앞두고 검찰 기소가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기름 가격 안내판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전쟁 재개로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재봉쇄하고 통행료 부과를 선언하면서 국제 유가는 다시 급등하고 있다. 16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전날 기준 싱가포르 현물 시장에서 국제 경유 가격은 배럴당 146.78달러로 이달 초(115.90달러) 대비 약 27% 상승했다.

국제 경유 가격은 올 초 배럴당 70달러 선에서 움직이다가 4월 2일 최고 291.80달러로 4배 넘게 뛰었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상으로 지난달 하순 110달러선까지 떨어졌다가 전쟁 재개로 재차 급등한 것이다. 경유는 대형 화물차, 건설 기계, 제조업에 쓰이는 산업 필수재라 공급 상황에 따라 가격이 민감하게 움직인다.

지난달 말 100달러 아래로 내려갔던 국제 휘발유 가격도 이달 들어 약 11% 올랐다. 휘발유는 경유 대비 가격 변동 폭이 작은 편이다.

정부는 종전 합의에 따른 국제 유가 하락세 등을 고려해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된 7차 최고 가격 기준을 경유와 휘발유 모두 리터당 150원씩 낮췄다. 2차 최고 가격제 이후 처음으로 가격을 낮추면서 최고 가격제 종료 수순이란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중동 전쟁이 다시 격화하면서 석유 최고 가격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최고 가격제 종료 조건으로 중동 종전, 국제 유가 90달러 이하 안정,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인 통항 정상화 등을 제시해 왔다.

다음 주 발표될 8차 석유 최고 가격은 물가 상승 부담을 감안해 7차 수준에서 동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국제 석유 제품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국내 최고 가격을 다시 올리기 어렵다"며 "일단 제도를 종료하면 다시 시행하기는 더 어려워 정부가 종료 시점을 정하기도 어려운 상황 같다"고 했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최근 국제 석유 제품 가격이 갑자기 뛰었으나 전쟁이 발발한 3월과 비교하면 그래도 낮은 수준"이라며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해 석유 최고 가격제 종료 시점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나희석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실에서 미국·이란 전쟁 관련 유가 교란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6.7.6/뉴스1

석유 최고 가격제 시행에 따른 반대급부로 정부가 약속한 정유사 손실 보전도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정유사의 도매 판매 가격 상한을 정하는 대신 그로 인한 정유사 손실을 예산으로 보전해 주기로 했다. 손실 보전을 위해 4조2000억원의 목적 예비비도 편성했다. 정부는 이달 안에 손실 규모를 산정할 정산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검찰이 이달 초 중동 전쟁 발발 후 유가를 담합한 혐의로 정유 4사(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를 기소하면서 손실 보전 필요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정유사들이 원가를 부풀렸다고 보고 최고 가격제 시행으로 정유사가 손실을 봤다는 전제 자체에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업계는 정부와 손실 보전 규모를 놓고 본격적인 협상을 해야 할 시기에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그동안 정유업계는 손실 계산 방식을 두고 정부와 대립해 왔다.

최고 가격제 시행 기간 정제 마진 급등으로 수익성이 오히려 좋아진 것도 정유사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정유 4사는 지난해 2분기 합산 1조2000억원대의 적자(영업이익 기준)를 기록했으나, 올해 2분기엔 합산 5조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사들은 실적 개선으로 정유사 손실 보전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석유 최고 가격제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부의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며 "정유업계 손실 보전, 주유소 경쟁력 약화 등 결국 국민에게 보여지지 않는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