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작업 장소는 상부 난간대가 제거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안전벨트는 착용하고 있었지만, 고리를 체결하지 않았습니다. '잠깐이면 끝난다'는 생각으로 위험을 가볍게 판단했습니다."
이달부터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조회 시간에 새로 보이는 광경입니다. 전날 안전 수칙을 어긴 근로자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 앞에 나와 직접 발표하는 겁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1일부터 핵심 안전 수칙인 '절대 수칙'을 어긴 근로자가 작업 전 회의에서 자신이 어긴 수칙과 당시 상황, 행동 결정 원인을 발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2주 만에 여섯 명이 동료들 앞에 섰습니다. 이를 두고 현장에서는 "공개 반성문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안전을 다잡자는 제도가 직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건 위반에 대한 조치가 개인 경고 차원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위반 당사자에게 교육이나 징계로 조치했다면, 이제는 책임과 후속 조치가 조직 차원으로 확대됐습니다.
특히 안전벨트 미체결은 작업 중지로 이어지는데, 위반이 거듭될수록 그 범위가 커집니다. 첫 위반 땐 위반자와 같은 작업 지시를 받는 인원, 두 번째는 위반자가 속한 과와 그 협력사 전체, 세 번째는 과의 상위 단위인 부서와 부서 소속 협력사 전체가 작업을 멈춥니다. 내 실수로 옆 동료, 나아가 협력사의 작업까지 멈출 수 있는 구조가 되면서 근로자들이 느끼는 부담의 결도 달라졌습니다.
회사도 절박한 사정이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의 작업과 중장비, 화기 작업이 뒤엉킨 조선소는 작은 부주의가 곧바로 목숨을 위협하는 사고로 이어지는 곳입니다. HD현대중공업이 2016년 7월 스마트폰 사용 금지, 사내 규정 속도 준수, 안전벨트 착용 등 생명과 직결되는 수칙을 담은 절대 수칙을 도입하고 위반 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온 이유입니다.
효과는 있었습니다. 절대 수칙 시행 전인 2000~2016년 평균 0.943이던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이 시행 후인 2017~2025년 평균 0.595로 낮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추락사고와 직결되는 안전벨트 위반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아 여전히 전체 절대 수칙 위반의 약 7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작업 중지 확대를 안전벨트 위반에 한정해 시행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HD현대중공업은 이 발표를 처벌이 아니라 재발 방지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로 설계했다는 입장입니다. 발표 자료는 소속 부서가 함께 만들고, 발표 후에는 관리감독자 주관으로 구성원들이 위험 요인과 개선 방안을 짚어보게 한다는 겁니다. HD현대중공업 측은 "개인을 지목하기보다 위반 원인을 분석해 재발을 막는 안전 문화 정착에 중점을 뒀다"며 "운영 과정에서 구성원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오해가 없도록 보완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는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잇따릅니다. 취지는 알겠지만 동료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과 판단 이유까지 밝히는 부담이 크다는 겁니다. 조직 단위 작업 중지를 두고는 '연좌제'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협력사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소속 업체의 안전 위반 이력이 재계약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실제 안전 관련 위반 내용에 따라 업체에 벌점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안전 관리 강화와 현장 반발 사이의 긴장은 조선업계 전반이 안고 있는 고민입니다. 최근 한화오션에서는 크레인 충돌·발판 낙하·감전 사고 관련 작업자들에게 내린 정직·감봉 처분을 두고, 노조가 산재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반발해 논란이 됐습니다.
수주 호황으로 일감은 쌓이는데 인력난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사망사고가 한 건만 발생해도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과 감독으로 공정 전체가 차질을 빚을 수 있습니다. 사고는 반드시 막아야 하는데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규율을 강화하면 현장 반발이 따르는 딜레마입니다.
근로자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회사가 안전 위반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안전 제도는 현장이 납득하고 따라줄 때 비로소 효과를 냅니다. 새 제도가 회사 의도대로 자발적인 안전문화로 정착할지는 결국 운영에 달려 있습니다. 규율의 강도를 높이는 일만큼 현장의 공감을 얻는 데도 공을 들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