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시에 건설하게 될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시설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예정대로 가동될 수 있을 지에 대해 '물음표'를 붙이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최대 원전 16기 규모에 해당하는 전력을 필요로 하는데, 외부에서 전기를 보내는 송전(送電) 시설을 어떻게 확보할 지에 대해 아직 뾰족한 해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서남권에도 반도체 산단 조성하겠다고 나서며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정부는 원자력발전소와 소형모듈원자로(SMR) 등을 건설하는 것까지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송전망 대책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남권 반도체 산단 조성으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기를 보내는 것이 더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송전탑 반대 전국 대책위 회원들이 지난 3월 4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용인 산단·송전선로 전면 재검토와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촉구를 위한 전국행동 3.4 궐기 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1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에 입주하는 SK하이닉스는 지난 2024년 2월 1기 팹(Fabrication·반도체 전용공장) 착공했고 내년 2월 가동을 목표로 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입주하는 국가산업단지도 오는 2028년 1기 팹 착공을 준비 중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용인 원삼면의 반도체 클러스터와 삼성전자가 이동읍과 남사읍 일대에 조성하는 첨단시스템반도체 산단으로 구성된다. SK하이닉스 4기, 삼성전자 6기 등 총 10기의 반도체 팹이 들어설 예정이다.

모든 팹의 건설이 완료될 시점에는 10GW(기가와트) 이상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필요 전력량을 최대 16GW로 예상한 바 있다. 통상 원자력 발전소 1기의 용량이 1GW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16기의 원전에서 나오는 막대한 전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2월 발표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초기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안에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 발전소 등을 지어 3GW의 전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모든 팹이 완공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지만, 최소 7GW 이상의 전력은 전국의 원전과 화력발전소, 재생에너지 시설 등에서 조달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각지에서 방대한 양의 전력을 용인으로 가져오기 위한 송전망이 확보돼 있지 않은데다 실행 계획도 명확치 않다는 점이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지난 2024년 7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오는 2036년까지 총연장 1153km 규모의 육상 345kV(킬로볼트) 송전망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주요 경로 7개 구간, 회선 기준으로는 14개 회선에 해당된다.

그러나 에너지 업계에서는 송전망 건설이 당초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송전망 건설 사업은 정부가 전력 계획을 승인해도 인·허가 권한은 지방자치단체가 갖는 '이중 인·허가 구조'로 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쉽게 말해 정부가 계획을 확정해도 지자체가 인·허가를 거부하거나 늦춰 송전망 건설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위치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 뉴스1

실제로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과거 정부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등 경기 남부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 송전망을 확충했는데, 주요 시설이 완공되는데 1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경기 평택 고덕과 서안성을 잇는 24km 길이의 345kV 송전망은 계획부터 준공까지 10년, 34km 길이의 충남 북당진~고덕 구간은 11년, 35km 길이의 북당진~신탕정 구간은 약 21년이 소요됐다.

북당진~고덕 송전망 건설 당시 당진 주민들과 당진시는 전자파 우려와 경관 훼손 등을 이유로 송전망 건설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한전은 결국 송전탑 대신 선로를 지중화하기로 합의했다. 서안성~고덕 구간에서도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삼성전자가 약 750억원의 공사비를 추가 부담하며 송전망을 지중화했다. 이 과정에서 건설이 지연된 것이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100km 미만의 구간에 짓는 송전망도 완공에 10년에서 20년 안팎이 걸렸는데, 7개 구간에 1153km에 이르는 송전망을 향후 10년 안에 다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송전망이 들어설 지역에서는 신규 송전망 건설에 대해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충청권에서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 수백명이 집회를 벌였고, 전북에서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확산됐다. 지난달 치러진 6.3 지방선거에서는 송전망 건설 저지가 공약으로 등장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9일 정부가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통해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포함한 서남권에 총 800조원이 투입되는 반도체 생산 시설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에 변수로 떠올랐다.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먼저 완공한 뒤 서남권 투자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 두 곳의 프로젝트를 별개로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경우 호남권에 분포한 재생에너지 시설과 전남 영광의 한빛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은 서남권 반도체 시설로도 공급될 가능성이 크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송전망 문제를 넘어 전력 공급원 자체를 새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6일 열린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당초 계획된 팹 10기 투자가 빠른 속도로 추진될 수 있도록 토지 보상부터 전력, 용수 공급까지 전반적인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전망 증설 등 구체적인 전력 공급 방안을 논의할 세부적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최근 서남권 반도체 산단 건설 계획 발표 이후 전력 공급량을 확대하기 위해 원전 등을 추가로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고 기저 전원을 안정화하기 위해 신규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 여부를 결정하고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서남권 반도체 산단 조성 등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 후 정부에서는 11차 전기본에 따라 추진되는 대형 원전 2기와 SMR 1기에 추가로 원전 등을 짓겠다고 거론해 왔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도 서남권 산단 건설에 따라 병목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존 송전망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학계와 지자체 일각에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전력과 용수 공급 문제로 당초 원안대로 건설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며 "전기를 보낼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원전 등을 통해 발전 시설만 새로 짓는 논의는 아무리 많아봐야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