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이달로 1년을 맞이하면서, 기업들이 이사회 안건 검토를 강화하는 등 경영 환경 전반에 변화를 주고 있다. 다만 이사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면서 소송 리스크가 커졌고, 이는 투자 의지를 꺾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공개한 '상법 개정 1년, 경영 환경 변화와 제도 안착을 위한 지원 과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4.3%가 '상법 개정 이후 이사회 운영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고 답했다. 변화가 없다고 답한 기업은 15.7%였다. 이번 조사는 상장 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해 7월 첫 번째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즉시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포함됐던 독립이사 비율 확대는 이달 말, 전자주주총회 의무화는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지난해 9월 2차 개정 내용인 집중투표제 의무화·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등에 적용돼 오는 9월 시행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지난 3월 3차 개정과 함께 즉시 시행됐다.

변화된 기업 경영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법무·준법팀 사전 검토 등 사내 점검 절차를 신설·강화'가 47.0%로 가장 많았다. '외부 전문가의 법률·회계 등 자문 확대'(45.7%), '이사별 찬반 의견 등 이사회 의사록 상세 작성'(43.7%) 등이 뒤를 이었다.

이사회 운영 방식 변화에 대해 기업의 39.6%는 의사 결정의 책임성이 높아지고, 지배 구조 투명성이 개선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22.4%는 컴플라이언스 비용 증가, 의사 결정 지연 등 기업의 부담이 커졌다고 답했다. 아직 체감할 만한 변화가 없다고 답한 곳은 37.3%였다.

문제는 소송 리스크에 대한 우려다. 응답 기업의 과반(53.7%)은 이사 충실의무 확대 이후 주주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청구 등 소송 우려가 커졌다고 답했다. 우려가 줄었다고 답한 기업은 6.0%에 불과했다. 변화가 없다는 기업은 40.3%였다.

이러한 소송 리스크는 기업의 투자 의사를 꺾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상법 개정 이후 투자·사업재편 등 주요 결정을 추진하는 데 '법적 검토 강화로 주요 의사결정이 지연·보류·취소됐다'고 답한 기업이 21.7%로 집계됐다. 변화가 없다고 답한 기업은 71.7%, 의사 결정이 더 신속해졌다고 답한 기업은 6.6%였다.

지연·보류·취소된 의사 결정으로는 신사업 발굴이나 인수·합병(M&A) 등 '신규 투자 및 사업 진출 관련'(30.8%)이 가장 많았다. 이 외에는 '재무·자본 조달'(18.5%), '임원 선임·보수'(16.9%), '자산 취득·처분'(15.4%), '계열사간 거래·구조 변경'(15.4%) 순이었다.

상법 개정 조항들이 연이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기업들의 현장 대비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내년 1월 도입되는 전자주주총회 의무화와 관련, 적용 대상인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중 '제도·운영 체계 구축을 완료했다'는 기업은 16.0%에 그쳤다.

내년 7월 말까지 독립이사 선임 비율 확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상장사(자산 1000억 이상~2조원 미만) 중 후보자 선정을 마친 곳도 17.6%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새로운 상법 체계의 안착을 위해선 정책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의 회사이익 배분 요구에 대한 판단 등 이사의 충실의무 가이드라인의 구체성을 보완(37.3%)해 달라는 목소리가 가장 컸다. 이어 '경영 판단의 원칙 명문화'(20.3%), '현장 실무자를 위한 법률·컴플라이언스 교육 지원'(12.7%) 등도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최은락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려면 기업의 노력뿐 아니라 현장 사례를 반영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과 실무 부담을 덜어주는 현장 밀착형 정책 지원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