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Science Fiction·사이언스 픽션) 작가 앤디 위어의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미지의 우주 미생물에 의해 태양이 빛을 잃어 인류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주인공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우주 임무에 모든 것을 거는 이야기다. 원래 '헤일메리(Hail Mary)'라는 말은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간절한 기도문 '아베 마리아(성모송)'를 뜻하는데, 스포츠 분야에서는 '마지막 승부수'를 의미하는 관용어로 사용된다.
1975년 미국프로풋볼(NFL)의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쿼터백 로저 스타우벅은 미네소타와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종료 32초를 남기고 50야드 롱패스를 던졌다. 이 패스를 와이드 리시버 드루 피어슨이 받아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뒀는데, 경기 종료 후 스타우벅이 인터뷰에서 "마음을 비우고 성모송(헤일메리)을 외우며 던졌다"고 소감을 밝히면서 '헤일메리 패스'라는 말이 유명해졌다.
위기에 빠진 기업도 헤일메리 패스를 던져야 할 때가 있다. 스포츠에서는 '어차피 지는 게임에서 성공하면 기적, 손해 볼 것은 없는' 시도지만, 기업의 마지막 승부수는 자칫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도박과 같은 상황에서 리더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과감한 결단으로 운명을 바꾼 두 기업의 사례를 보자.
마블, 자산을 지키기 위해 전부를 걸다
지금은 글로벌 콘텐츠 제국이 된 마블(Marvel)이 1996년 법원에 파산 신청을 냈다. 만화 시장이 붕괴하면서 회사가 벼랑 끝으로 몰린 것이다. 당시 마블 앞에는 비교적 안전한 길이 있었는데 바로 '스파이더맨(Spider-Man)' '엑스맨(X-Men)' '판타스틱 4(Fantastic Four)' 등 인기 캐릭터의 영화 판권을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에 하나씩 팔아 연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마블은 섬뜩한 진실을 깨닫는다. 캐릭터를 잘라 파는 길은 당장은 숨통을 틔워줄지언정, 기업의 심장을 조금씩 도려내는 '느린 죽음'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2005년 마블은 대담한 도박을 감행한다. 남아 있던 '어벤져스(Avengers)' 등의 캐릭터 판권을 담보로 미국 투자은행(IB) 메릴린치로부터 5억2500만달러(약 7960억원)를 빌려 직접 영화를 제작하기로 선언한 것. 이 작품이 실패하면 핵심 캐릭터마저 모조리 빼앗기고 회사가 공중분해되는 배수의 진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Iron Man)'은 전 세계에서 5억8500만달러(약 8956억원)를 벌며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이듬해 마블은 디즈니에 40억달러(약 6조1240억원)에 인수됐다. 마블이 눈앞의 위기만 모면하려는 판권 장사에 안주했다면 오늘날의 마블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베스트바이, 약점을 정면으로 끌어안다
2012년 미국 최대 가전 유통 업체 베스트바이(Best Buy)는 아마존의 공습 앞에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주가는 10년 만에 최저치인 15달러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소비자는 베스트바이 매장에서 제품을 실물로 확인한 뒤 구매는 아마존 최저가로 결제했다. 오프라인 매장을 비용 부담으로 전락시킨, 이른바 '쇼루밍(Showrooming)' 현상이었다.
그해 가을, 구원투수로 취임한 최고경영자(CEO) 위베르 졸리에게 시장 전문가는 한목소리로 "오프라인 매장을 과감히 축소하고, 직원을 감축해 몸집부터 줄여라"라는 처방을 내밀었다. 하지만 졸리는 칼을 거꾸로 잡았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오프라인 매장'을 오히려 무기로 삼은 것이다.
2013년, 그는 아마존을 비롯한 온라인 최저가와 무조건 가격을 맞춰주는 '매칭 프라이스(matching price)' 정책을 전면 도입했다. 동시에 삼성,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에 핵심 매장 공간을 임대하는 '매장 내 매장(store-within-a-store)' 전략을 펼쳤다. 비용만 축내던 공간을 파트너 회사의 쇼룸이자, 안정적인 임대 수익 플랫폼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모험은 적중했다. 졸리 취임 당시 10달러대였던 주가는 그가 물러난 2019년 7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무모하게 지르는 용기가 아니라 본질을 분별하는 눈이다. 지금 택하려는 임시방편이 정말 안전한 대안인가, 아니면 그저 천천히 가라앉는 배 위에서 시간을 버는 것에 불과한가. 이판사판으로 내지르는 '만용'과 리스크의 끝을 내다보고 감수하는 '결단'은 엄연히 다르다.
결단과 만용, 본질을 보는 눈이 가른다
두 기업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과감한 한 수가 필요하다'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다. 사활을 걸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진 기업도 부지기수다. 눈먼 과감함이 아닌 진짜 위험에 대한 냉정한 계산이 먼저다.
마블의 이사회가, 베스트바이의 졸리 CEO가 위험천만한 승부수를 던질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는 선택이 결국 죽음에 이르는 미봉책임을 간파했다. 그 착시를 깨부쉈기에 판을 뒤엎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무모하게 지르는 용기가 아니라 본질을 분별하는 눈이다. 지금 택하려는 임시방편이 정말 안전한 대안인가, 아니면 그저 천천히 가라앉는 배에서 시간을 버는 것에 불과한가.
이판사판으로 내지르는 '만용'과 리스크의 끝을 내다보고 감수하는 '결단'은 엄연히 다르다. 리더의 존재 이유는 위기를 매끄럽게 넘기는 유능함에 있지 않다. 미봉책의 유혹을 뿌리치고 역전의 공을 띄우는 결단력, 바로 그것이 관리자와 진짜 리더를 가르는 기준이다.
Plus Point
위기 앞 결단 아닌 회피가 망친 기업
코닥·시어스 쇠락의 길로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하고도 필름 사업 수익 보호를 위해 경영진이 상용화를 포기했다. 본질을 외면한 채 익숙한 것에 기댄 것이다. 그 결과, 회사는 2012년 1월 파산 신청을 냈다.
미국 유통 체인 시어스는 아마존이 부상하던 시기 온라인 전환 대신 부동산 자산 매각으로 단기 실적을 방어했다. 그러다 2018년 10월 파산 신청을 냈다. 파산 당시 687개였던 매장은 이후 사실상 소멸 수준으로 줄었다. 기업이 중요한 순간에 결단이 아닌 회피를 택한 대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