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이 늘면서 핵심 장비인 가스터빈 공급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 용인과 광주에 지어질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 계획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10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용인시에 구축 중인 '용인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은 10기가와트(GW)다. 이 중 3GW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6기 구축을 통해 2038년까지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광주로 입지가 정해진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은 6.3GW로 역시 일부는 LNG 발전으로 충당할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현재 천연가스 발전소의 주요 부품인 300메가와트(MW) 이상의 대형 가스터빈 주요 공급사인 미국 GE 버노바, 독일 지멘스에너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등에 가스터빈을 발주할 경우 공급까지 최소 5년이 소요되는 상황이다.
국내 유일 가스터빈 공급사인 두산에너빌리티의 공급 기간은 이보다 다소 짧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에너지 업계에 관계자는 "가스터빈 시장에서는 요즘 발주처가 아닌 공급사가 갑인 상황"이라며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스터빈 수요가 넘치는 데에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증한 것이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미국을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내에 전력 공급을 위한 천연가스 발전소를 짓는 추세다.
일례로 메타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리치랜드 패리시에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 '하이페리온' 구동을 위해 총 5.2GW 규모의 신규 천연가스 발전소 7곳을 짓기로 했다. 하이페리온의 전력 소모 규모는 5GW 수준이다.
여기에 확산하고 있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백업 전원으로 천연가스 발전소를 찾는 수요도 늘었다. 또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석탄 발전 대비 탄소 배출이 낮은 천연가스 발전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신규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 계획은 지난 1년 동안 급증했다. 2025년 초 이후 건설 중인 가스발전소 용량은 직전 연도의 두 배 이상인 약 30GW에 달한다.
반면 주요 기업의 가스 터빈 공급 능력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스웨덴 자산운용사 코엘리(Coeli)에 따르면 대형 가스터빈 기준, 전 세계 신규 주문량은 88~100GW 수준이다.
그러나 주요 가스 터빈 제조사의 생산능력은 연간 50~60GW(GE 버노바 20GW, 지멘스에너지 15GW, 미쓰비시중공업 12GW, 두산에너빌리티 3GW 등) 수준이다. 시장 수요의 약 40%가 공급 부족 상태인 셈이다.
세계 1위 가스 터빈 공급업체인 GE 버노바는 지난 4월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가스 터빈 주문 잔고가 100GW를 돌파했다며, 분기당 약 25기의 가스 터빈을 출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스콧 스트라직 GE버노바 최고경영자(CEO)는 "2030년까지 생산할 수 있는 라인은 단 10GW만 남았다"며 "현재 2031년 이후 인도 물량을 계약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산 시설을 확충하는 기업도 늘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니시오 히로시는 지난달 28일 일본 닛케이(니혼게이자이신문)와 가진 인터뷰에서 "2030년까지 대형 가스터빈 생산능력을 2024년 대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며 "일본과 미국 공장에 6억1800만달러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2025 회계연도 기준 수주 잔고는 74대다.
GE 버노바는 지난해 1월, 미국 내 제조 역량 강화를 위해 총 6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1억6000만달러 이상은 가스터빈 핵심 기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 공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대형 가스터빈 생산능력을 기존 대비 25% 확대해 연간 24GW 규모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지멘스에너지 역시 지난 2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공장의 가스터빈 제조 설비를 확장하는 데 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현재 연간 8기 수준인 대형 가스터빈 생산능력을 2028년까지 연간 12대로 늘릴 예정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 이후 현재까지 미국 12기를 포함해 총 23기의 가스터빈을 수주했다.
◇ 반도체 클러스터 영향 우려도
일각에서는 가스터빈 부족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본다.
삼성전자가 용인시에 짓고 있는 '용인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는 애초 2038년부터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정부가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하며 용인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가동도 계획보다 당기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정부는 용인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10GW의 전력 중 3GW는 LNG 발전을 통해 2038년까지 공급할 계획이었으나, 이 계획도 앞당겨야 하는 상황이다.
서남권도 마찬가지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 겸 반도체(DS) 부문장은 지난달 30일 광주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투자계획 보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에게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원자력발전소 확대 및 전력구매계약(PPA)을 적극 추진해 주시고, LNG 열병합 발전 추진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팹 4기가 들어설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6.3GW의 전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남과 광주의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각각 7.2GW, 0.44GW다. 반면 가스터빈 설비용량은 전남이 1.5GW, 광주가 0.08GW에 불과하다.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늘리더라도 원자력발전이나 LNG발전이 추가로 건설돼야 필요 전력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에너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공정에는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중요해 재생에너지보다 원전, LNG 발전이 적합하다"며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이에 대한 내용이 담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