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1시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로보컵(Robocup) 2026'의 대형 휴머노이드 로봇 부문 축구 결승전 현장. 일반 축구장 면적(7140㎡)의 약 2.5% 수준인 176㎡ 면적의 미니 축구장에서 키 118㎝ 휴머노이드 로봇 6대가 3대 3으로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각각 중국 칭화대학교 '헤파이스터스(Hephaestus)'와 중국농업대 'CAU마운틴앤씨(CAU Mountain&Sea)'가 출전시킨 로봇들이다.
전·후반 각 10분간 '부상자'가 속출했다. 로봇들은 경기 중 넘어지거나 부딪히기 일쑤였고 아예 널부러져 일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후반전 종료 1분을 앞두고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칭화대팀 로봇이 농업대팀의 골문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에도 농업대팀의 로봇 한 대는 골대 근처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결국 칭화대팀 로봇이 마지막 골을 터뜨리면서 6:2로 이겼다. 칭화대 헤파이스터스팀은 올해 22개팀이 참가한 대형 휴머노이드 로봇 부문에서 2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자오밍궈 칭화대 헤파이스터스팀 지도교수는 "지난해 우승 이후로 공 차기와 패스에 더 집중했다"며 "공을 더 빠르게 차고 옆으로 돌아 유연하게 패스하는 움직임이 다른 로봇들보다 유연했던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고 했다. 후뱌오 농업대 CAU마운틴앤씨팀 지도교수는 "지난 1년 동안 칭화대팀 로봇의 달리기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열린 '로보컵 2026'에는 4개(휴머노이드 로봇 축구·재난구조·가정환경·산업 환경) 분야 7개 리그에 전 세계 45국에서 온 218팀이 참가했다. 로보컵은 로보틱스·인공지능(AI) 분야 국제 비영리 학술단체인 세계로보컵연맹(RCF)의 주최로 1997년 출범했다. 올해로 29회째를 맞았다. 2050년까지 사람 월드컵 우승팀을 이길 수 있는 로봇 축구팀이 탄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대형 휴머노이드 로봇 부문 결승전에 오른 칭화대 헤파이스터스팀과 농업대 CAU마운틴앤씨팀은 모두 중국 기업 '부스터로보틱스(Booster Robotics)'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T1 모델로 참가했다. 부스터로보틱스에 따르면, T1은 키 118㎝, 무게 30㎏의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자유도(로봇의 관절 수), 무릎 관절 토크, 회전 범위 등 설계가 축구 동작에 최적화돼 있다.
부스터로보틱스는 중국 칭화대 연구실에서 스핀오프(분사)한 기업이다. 올해 총 56개 팀(대형·중형·소형 부문)이 출전한 이번 휴머노이드 로봇 축구 대회에서 자체 제작한 로봇을 선보인 팀은 8팀에 불과했다. 약 40%에 달하는 22개 팀이 부스터로보틱스의 T1 또는 K1 모델을 갖고 참가했다. 미국 텍사스대(오스틴) '유티오스틴빌라(UT AustinVilla)'도 중국 T1을 출전시켰다.
과거 직접 로봇을 제작해 대회에 출전했던 팀 가운데 올해는 부스터로보틱스의 제품을 구매해 참가한 팀도 다수였다. 프랑스 출전팀 '로반(RHOBAN)'도 지난해엔 자체 개발 로봇으로 참가했으나 올해는 부스터로보틱스의 T1모델을 갖고 참가했다. 로반 관계자는 "축구에 특화된 동작을 학습시키기 위해 부스터로보틱스의 로봇을 구매했는데 축구 실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부스터로보틱스 로봇을 갖고 참가한 팀들은 이 회사 제품을 선택한 이유로 높은 가성비를 꼽았다. 대회 후원사인 부스터로보틱스·푸리에로보틱스·유니트리·하이토크 중 부스터로보틱스의 가격이 가장 저렴했다. 부스터로보틱스의 T1 모델은 2만400달러(약 3100만원)로, 푸리에로보틱스의 GR-1 모델(3만달러)보다 32% 저렴하다. 국내 로봇 기업 에이로봇이 자체 개발한 키 170㎝의 휴머노이드 '앨리스5' 모델은 약 9000만원이다.
브라질 바이아연방대학교 '바이아RT(Bahia RT)' 팀 관계자는 "부스터로보틱스 제품은 축구 성능이 좋을 뿐 아니라 가격이 가장 저렴해 우리 대학팀의 예산으로 2대를 구매했다"고 했다.
중국 로봇이 대회를 점령하면서 국가별 휴머노이드 로봇 발전 수준을 비교해볼 수 있는 로보컵의 관전 포인트가 퇴색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더 많은 국가의 산업 현장이 중국 로봇으로 도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황명중 서울시립대 기계정보공학과 교수는 "자체 개발한 로봇을 가져오는 규정이 바뀌면서 이번 대회에서 수상 팀과 해외 팀 상당수가 중국 한 회사의 제품을 썼다"며 "우리나라에서도 만일 중국 로봇을 사용하면 국내 로봇이 없게 되니 로봇을 개발하는 한국 팀에 대한 응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로보컵은 일종의 로봇 산업의 예고편"이라며 "중국 로봇이 휩쓰는 현상이 4~5년 뒤에 산업 현장에서 벌어진다고 한다면 중국 로봇이 전 세계 산업을 호령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2011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소속으로 로보컵에 처음 출전해 우승한 뒤, 한양대에서 국내 팀을 꾸려 2022년부터 매년 대회에 참가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