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대구광역시의 한 번화가 교차로. 시속 80km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던 택시가 정지 신호를 발견하고 급하게 속도를 줄이자 조수석 상단에 부착된 단말기에 표시된 숫자가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정속 주행을 할 때 90점을 웃돌던 점수는 몇 차례 급정거와 급가속을 반복하자 50점 안팎으로 떨어졌다.

다양한 주행 상황에서 단말기의 점수는 실시간으로 변화했다. 급하게 추월하거나 급격하게 차로를 바꿀 때마다 점수는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속도를 낮춰 다시 정상 운행하면 점차 올랐다. 운전자는 "위성항법시스템(GPS)와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단말기가 교통 상황과 신호 준수, 보행자 회피 여부 등도 감지해 실시간으로 점수를 매긴다"고 말했다.

조수석 우측 상단에 바이펜스의 운행 데이터 수집 장치를 장착한 택시가 대구 시내 도로를 주행하는 모습. /진상훈 기자

이 단말기는 국내 스타트업 DGT모빌리티의 자회사인 바이펜스코리아가 개발한 차량 안전 관리 플랫폼 '바이펜스'다. 급가속·급감속·급출발·급정거·급진로변경·급추월·급좌우회전·급유턴 등 국토부가 선정한 11대 위험운전 항목으로 운전 상태를 실시간 평가한다. 또 차량 내부의 공기질도 감지해 평가에 반영한다.

바이펜스의 '실시간 실차 운행평가 시스템'은 최근 다양한 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단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서비스 도입 후 택시 사고 건수가 눈에 띄게 감소했고, 승객들의 만족도 역시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전국적으로 이 서비스를 의무화하고 고득점을 유지하는 운전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할 경우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고령 택시 기사들의 안전 사고를 줄이는데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 대구시, 실시간 실차 운행 평가 시스템 도입 후 택시 사고 22% 감소

바이펜스코리아는 대구대학교 산학협력단과 손잡고 바이펜스를 개발했다. 이 플랫폼은 OBD2(On-Board Diagnostics II·차량용 표준 자가 진단 시스템)와 GPS를 결합해 실시간 운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미세먼지와 화학물질 등 실내 공기질도 분석한다. 운전자와 탑승자는 실시간으로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택시 회사는 누적된 정보를 기사의 평가 등에 활용하게 된다.

대구시 택시업계는 바이펜스 플랫폼을 도입한 이후 많은 성과를 얻고 있다.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 대구지부가 조합원 987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5개월 간 전체 사고 건수는 1810건으로 1년 전보다 12.9% 감소했다. 바이펜스를 도입한 택시가 순차적으로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이펜스의 실시간 운행 평가 시스템을 적용한 업체들의 경우 사고 감소율은 22%로 훨씬 높았다.

실시간 운행 데이터가 택시 기사의 인사 평가로 활용됨에 따라 유형별 위험 안전의 횟수도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승객들의 가장 큰 불만 사항으로 지적돼 온 급출발의 경우 바이펜스를 설치한 이후 26% 감소했고 급가속과 급좌우회전은 각각 38%, 47% 감소했다.

바이펜스의 운행 데이터 수집 장치. 주행 패턴에 따라 실시간으로 점수가 변동된다. /진상훈 기자

택시 서비스의 질이 개선되고 사고율이 떨어진 점이 부각되면서 도입 차량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바이펜스 플랫폼 적용 택시는 지난해 1월 약 2200대에서 12월 약 8600대로 약 1년 만에 4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정창기 대구개인택시조합 이사장은 "처음 바이펜스 플랫폼 도입 당시에는 실시간 평가를 받는데 대한 기사들의 거부감이 컸지만, 지금은 오히려 고득점을 받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며 "승객들도 서비스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져 택시 이용률이 오르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평가점수 높으면 자격유지검사 면제… 고령 택시 기사 문제 해결책 부각

바이펜스 플랫폼은 최근 모빌리티 업계에서 고령 택시 기사의 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으로 꼽히고 있다. 고령 운전자들은 면허 갱신을 위해 자격유지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오랜 기간 쌓인 운행 평가가 좋으면 검사를 면제해 주는 등의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할 경우 운전자들이 안전 운행에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다.

한국교통안전공단과 DGT모빌리티가 공동 주관한 '고령 운전자 안전운전 유도 시범사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택시공제조합 대구지부에 소속된 65세 이상 고령 택시 운전자의 사고건수는 바이펜스 도입 시범사업 전 626건에서 사업 후 421건으로 32.7% 감소했다. 유형별 위험운전도 22.4%의 감소율을 기록했다.

눈에 띄는 사고 감소 효과를 확인한 택시업계는 최근 정식으로 바이펜스 도입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고령 택시 운전자의 비중 증가에 따른 불안감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대구 서구에서 70대 운전자가 몰던 택시가 차량 여러 대를 잇따라 추돌한 모습. 이 사고로 운전자 등 10명이 다쳤다.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경북 택시운송사업조합과 전국운수서비스사업노조 경북지역본부 등 대구·경북 6개 단체는 최근 국회에 실시간 실차 운행 평가 데이터를 활용한 안전관리 체계를 도입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청원서에는 실시간 운행 데이터 수집 장치를 통해 일정 기준 이상의 안전 점수를 획득한 기사에 대해서는 자격 유지 검사를 면제하거나 유예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제도상 65세 이상 택시 운전자는 나이에 따라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하는 자격 유지 검사나 의료 적성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65~69세는 3년마다, 70세 이상은 매년 검사 의무가 있다.

택시공제조합 관계자는 "바이펜스와 같은 실시간 운행 데이터 수집 장치를 통해 장시간 쌓인 점수는 단발적인 적성 검사보다 훨씬 객관적이고 효율적으로 고령 운전자의 능력을 검증할 수 있다"며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경우 자격 유지 검사 실시로 인한 불필요한 행정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로보택시·완전 자율주행 시대에 제3자 검증 플랫폼로 주목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향후 바이펜스가 국내에서도 운행이 시작될 로보택시와 완전 자율주행차의 안전성 여부를 검증하는 데도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미국과 중국 등에서는 로보택시가 일부 지역에서 운행되고 있지만, 빈번한 사고로 인해 안전성을 면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로보택시 사업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는 최근 잇따른 사고로 안전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지난 5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발생한 테슬라 로보택시 17건의 사고 경위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로보택시는 정지 상태에서 제대로 주행을 하지 못하거나, 원격 조종 중 차단물 등과 충돌하는 등의 사고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비보호 좌회전 중 물체나 도로를 건너는 동물을 인지하지 못해 들이받는 사고도 있었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정형화된 상황에서는 자율주행 차량이 완벽에 가까운 안전성을 갖추고 있지만, 언제든 오류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데다 다양한 주행 변수에서도 취약하다는 지적이 많다"며 "바이펜스와 같이 제3자의 위치에서 운행 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이 더욱 고도화된다면 로보택시, 완전 자율주행차의 성능 검증과 사고시 문제점 파악 등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