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최대 60조원 규모 캐나다 차기 잠수함 사업(CPSP)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잠수함 기술 선도국인 독일과 박빙 승부를 펼치면서 방산 경쟁력을 국제적으로 각인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각국에서 잠수함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이번 경험을 발판 삼아 향후 본격적인 수주 랠리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6일(현지시각)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CPSP 적격후보(숏리스트)에 오른 한국 한화오션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 중 TKMS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CPSP는 캐나다가 2030년대 중반 퇴역 예정인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하기 위해 최대 12척의 신형 디젤 잠수함을 도입하는 사업이다. 함정 건조 비용에 향후 30년간 유지·보수·운영(MRO) 비용까지 더하면 전체 사업 규모는 최대 6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CPSP 수주전에선 탈락했지만, 한국도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캐나다 측에 제시한 잠수함은 3000t급 '장보고-Ⅲ' 기반 '배치-Ⅱ'다. 이 잠수함은 공기가 필요 없는 '공기불요추진장치(AIP)'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적용해 3주 이상 수중 작전이 가능하고 최대 7000해리(1만2900㎞)를 운항할 수 있다. 현존 디젤 추진 잠수함 중 최강의 작전 성능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3월 장보고-Ⅲ 배치-Ⅰ첫 번째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은 경남 진해에서 출항해 태평양을 횡단하며 약 1만4000㎞ 거리를 항해하는 등 작전 수행 능력을 증명했다. 당시 도산안창호함에 탑승했던 캐나다 해군은 "1999년식 혼다 시빅을 타다가 신형 테슬라를 마련한 것 같다"며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CPSP 수주전에서 잠수함 능력 측면에서는 독일보다 한국이 앞섰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장보고-Ⅲ 배치-Ⅱ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할 수 있는 수직발사대(VLS)를 탑재하고 있어 비대칭 억제 전략을 펼칠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TKMS가 캐나다 측에 제시한 '212CD'에는 VLS가 없다. TKMS와 달리 '장영실함'이라는 실증 모델이 있다는 점도 강점이었다.
방산업계에서는 한국이 독일과 대등한 선에 올라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독일은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을 만들어 전쟁을 치른 만큼, 100년 이상 경험을 쌓은 국가다. TKMS가 만든 수출형 잠수함은 전 세계 해군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한화오션의 현재 잠수함 건조 기술도 대우조선해양 시절 독일에서 이전받은 것이다.
이러한 독일과 박빙으로 겨루었다는 자체만으로도 한국 잠수함 기술이 크게 성장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캐나다 잠수함을 최종 수주했다면 좋았겠지만, TKMS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잠수함 제조업체와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 숏리스트에 올랐다는 것도 한국 방산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안정적 납기 능력도 이번 수주전을 통해 드러났다. 한화오션은 캐나다 측에 올해 계약 체결을 전제로 2032년 첫 번째 함을 인도하고, 2035년까지 4척을 공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잠수함은 계약 체결 이후 납품까지 보통 9년이 걸리는데, 이를 6년으로 단축한 것이다. 독일은 이보다 1년 늦은 2036년까지 잠수함 4척을 캐나다 측에 넘기기로 했다.
CPSP 수주전을 통해 한국 잠수함 기술이 널리 알려진 만큼, 앞으로 예정된 세계 잠수함 수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나온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는 3000t급 잠수함 최소 4~6척과 4000~6500t급 호위함 5척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업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해군 현대화 과정 관련 입찰 규모만 약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는 노후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차세대 잠수함 4척을 도입할 계획이다.
동남아에서도 잠수함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필리핀은 2조원 규모 중형 잠수함 2척을 도입하는 사업을 검토 중이고, 태국은 4000t급 호위함 4척 도입을 추진 중이다. 말레이시아는 올해 다목적 지원함 2척을 도입한다.
한화오션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우리 잠수함의 뛰어난 성능, 해군의 성공적인 잠수함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수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며 "이번 수주 경쟁을 통해 확인된 과제들을 면밀히 분석해 확실한 대안을 강구하고, 'K-해양 방산'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도약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찾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