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물류 계열사 현대글로비스는 지난달 말 소형 자동차 1만대 이상을 실을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자동차 운반선(PCTC·pure car and truck carrier) '글로비스 랜더'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말 인도된 '글로비스 리더', 6월 초 운항을 시작한 '글로비스 라이트하우스'에 이어 세 번째로 투입한 1만800CEU(차량 환산 대수)급 PCTC다.

현재 전 세계에서 자동차 1만대 이상 수송이 가능한 1만800CEU급 자동차 운반선은 현대글로비스가 운용하는 세 척이 전부다. 그런데 이 배들은 모두 중국 국영 중국선박공업집단(CSSC) 산하의 조선소 두 곳(광저우GSI·상하이SWS)이 나누어 건조했다. 조선 강국인 한국의 해운사가 세계 최대 규모 자동차 운반선 3척을 모두 중국산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글로비스는 2026년 6월 초 자동차 1만800대를 실을 수 있는 두 번째 자동차 운반선(PCTC) '글로비스 라이트하우스'를 해상 운송에 투입했다. /Seaspan

자동차 운반선 시장에서 중국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조선사들이 이익이 많이 남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에 집중하면서 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데다, 중국 조선사들의 저가 공세도 거센 상황이다 보니 시장의 대부분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계 전문가들은 수익성이 낮은 시장이더라도 시장 전체를 내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6일 중국 신더하이스왕과 영국 클락슨리서치 등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자동차 운반선은 20척 안팎 발주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4월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한 2척을 빼면 모든 물량을 중국 조선소가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노르웨이 UECC는 지난 3월 난징 자오상쥐진링선박에 유럽 내 근해 항로를 운항할 3000CEU급 PCTC 두 척을 발주했다. 영국 조디악마리타임은 지난 5월 중국 옌타이CIMC라이푸스에 7000CEU급 LNG 이중 연료 추진 PCTC 2척을 발주했다.

이스라엘 선박 거물 에얄 오페르가 이끄는 조디악마리타임은 현재 22척의 PCTC 선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을 옌타이CIMC라이푸스가 건조했다. 키프로스에 본사를 둔 살라움라인즈는 지난달 샤먼선박중공에 8600CEU급 PCTC 4척을 발주했다.

자동차 운반선 시장은 2022~2024년 연간 60~90척씩 발주되며 호황을 맞았다. 당시에도 중국 조선소가 이 물량을 대거 흡수했다. 프랑스 해운·물류 데이터 분석 기업 AXS마린이 지난 2월 발간한 월간 보고서에 따르면, 2023~2028년 인도 완료 또는 인도 예정인 자동차 운반선 276척 가운데 219척(79.4%)이 중국 조선소가 수주한 물량이다. 일본이 47척(17%)으로 뒤를 이었다. 한국 조선소는 자동차 운반선 신조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상황이다.

대규모 발주 물량이 본격 인도되면서 지난해 자동차 운반선 신규 주문은 약 30척으로 감소했다. 올해도 상반기에 약 20척이 발주되며 호황기와 비교해 발주 증가세가 둔화한 가운데 중국 조선소의 '독식'은 더 심화한 상황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수주 잔고가 비교적 넉넉한 상황에서 한정된 건조 슬롯을 LNG 운반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부가가치와 수익성이 더 높은 선종 위주로 채우고 있다.

예를 들어 HD현대중공업이 지난 5월 수주한 LNG 운반선 두 척의 척당 계약액은 3719억원(약 2억5000만달러)으로, 지난 4월 수주한 PCTC 두 척의 척당 계약액(1992억원, 약 1억3446억달러)보다 87%가량 비싸다. LNG 운반선은 이익률도 10%대 중반으로, 한 자릿수인 PCTC의 두 배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국영 중국선박공업집단(CSSC) 산하 조선소가 건조한 세계 첫 1만800CEU(1CEU는 자동차 한 대)급 자동차 운반선 '글로비스 리더'. 현대글로비스가 장기 용선(빌림)해 해상 운송에 투입했다. /CSSC

여기에 자동차 운반선은 건조 기술이 평준화돼 있기 때문에 중국이 비용 경쟁력을 내세워 시장을 장악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조선소가 수주하는 동급 PCTC 선가에 비해 중국 조선소의 수주 가격은 약 15~2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조선소는 기술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자동차 운반선을 대량 건조하고 부품을 내재화하며 단가를 낮춰왔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자동차 운반선은 구조가 단순해 누가 더 싸게 만드느냐의 경쟁인데, 가격 경쟁이 붙으면 우리나라 같은 고비용 구조에서는 사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를 필두로 중국발 자동차 수출 물량이 늘어난 것도 중국 조선사 독식의 이유로 꼽는다. 엄경아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자동차 운반선 시장은 자동차라는 단일 품목을 무역 거래하는 특수하고 한정적인 운송 시장이라 자동차를 대량으로 수출하는 제조사가 없는 국가가 영위하기는 어려운 사업"이라며 "지금 자동차 물동량이 많이 증가하는 분야가 중국의 전기차 물량이기 때문에 운반선 건조도 중국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운반선에서 수익이 크게 나지 않더라도 국내 조선사들이 이 시장을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동차 운반선은 유사시 중요한 선종이기 때문에 최근 해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우려스럽다"며 "가능하면 우리나라 자동차 운반선은 우리나라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해외와 국내 건조 차액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내 조선업계도 이 시장을 완전히 포기하진 않은 상태다. 고사양 자동차 운반선 기술 개발에 나서는 등 추후 시장 점유율을 높일 궁리를 하는 중이다. HD현대중공업은 소형모듈원자로(SMR) 추진 자동차 운반선을 개발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달 SMR의 한 종류인 용융염원자로(MSR) 기술을 적용한 대형 자동차 운반선 개념설계에 대해 영국선급(LR)으로부터 기본인증(AIP)을 받았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SMR 추진선은 운항 중 탄소 배출이 없어 탄소 중립 시대에 걸맞은 궁극의 친환경 선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