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J중공업의 최대주주(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가 HD현대중공업의 전북 군산조선소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부산 영도조선소(HJ중공업)와 군산조선소(제이오션중공업)가 각각 중형 선박과 대형 선박 건조로 역할을 나눌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HJ중공업은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연 5~6척의 상선을 건조해 왔는데, 부지와 독(물을 채우고 뺄 수 있게 만든 선박 건조 작업장) 크기 제약 때문에 수익성이 더 높은 대형 선박을 수주하지 못했다.

군산조선소가 국내 최대 규모 조선소 인프라를 갖춘 만큼 앞으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등 대형 상선 생산 기지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HJ중공업이 미국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시작한 만큼, 군산조선소도 미 해군 함정 MRO를 위한 거점으로 쓰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2018년 5월 전북 군산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독(선박 건조 작업장)이 비어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제이오션중공업은 지난달 26일 HD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 자산을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하고 인수 절차를 진행 중이다. 제이오션중공업은 HJ중공업의 최대주주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이 군산조선소 운영을 위해 세운 신설 법인이다. 제이오션중공업은 연말까지 인수 절차를 완료하고 내년 초부터 시설 정비와 설비 보강 등을 거쳐 선박 건조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군산조선소는 HD현대중공업이 2010년 군산국가산업단지에 새로 지은 대형 조선소다. 조선업이 침체기를 맞으며 2017년 선박 인도를 마지막으로 완성선 건조를 중단한 채 선박 구조물인 블록만 일부 생산해 왔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조선업 업황은 군산조선소를 재가동해도 충분히 고정비를 만회하고도 남을 수준의 호황이긴 하지만, 사이클 산업 특성상 언젠가는 업황이 꺾일 것이기 때문에 HD현대중공업 입장에선 새로운 주력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군산조선소 매각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제이오션중공업은 군산조선소 인수 발표 직후 오세아니아 지역 선주사와 11만4000톤급 원유·석유제품운반선 4척을 짓는 건조의향서(LOI)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LOI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선주가 조선소와 선종이나 사양, 가격 범위 등을 상당 부분 합의한 상태에서 체결하기 때문에 중대한 변수가 없는 경우 대체로 정식 계약으로 이어진다. 제이오션중공업은 2028년 첫 신조선(새로 만든 배) 인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선박은 HJ중공업이 개발한 선박이다. HJ중공업 최대주주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이 지난 3월 군산조선소 자산 인수를 위한 합의각서를 체결한 후 선주사가 HJ중공업 측에 군산조선소 슬롯(건조 공간) 예약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조선소가 지난 9년간 신조선을 제작한 경험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선주사가 HJ중공업의 역량을 보고 발주 의향을 전달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부산 영도구의 HJ중공업 영도조선소 전경. /HJ중공업

군산조선소 인수를 통해 HJ중공업은 부산 영도조선소의 생산 시설 제약을 해소하고 수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영도조선소는 부지 규모 26만제곱미터(㎡)에 독 길이가 300m에 불과해 대형 선박 건조에는 한계가 있다. 영도조선소는 컨테이너선 위주의 중형급 상선과 해군·해경 특수선을 주로 건조해 왔다. 이 중 연간 상선 건조능력은 6~7척 수준이다. 지난해 상선 4척을 인도한 데 이어, 올해 5척, 내년 7척을 인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면 군산조선소는 부지 규모 180만㎡에 독 길이가 700m에 달하는 대형 조선소다. 국내 최대 규모인 1650톤(t)급 골리앗 크레인과 1.4㎞에 달하는 안벽 등도 갖추고 있다. HJ중공업 관계자는 "길이 약 300m에 적재 중량 톤수(DWT)가 20만DWT 이상인 초대형 VLCC 두 척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규모"라고 했다.

다만 군산조선소가 지난 9년간 신조선을 건조한 이력이 없어 숙련 인력과 최신 설비 등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기술 난이도가 높은 선박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기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군산조선소가 워낙 큰 규모로 지어져 대형 선박을 만들기에 적합하다"며 "하지만 오래 비어져 있었기 때문에 현재로선 기술 난도가 높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보다는 대형 유조선이나 컨테이너선 위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군산조선소가 향후 미 해군 사업을 위한 기지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HJ중공업은 올해 1월 미 해군과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하며 미 해군 MRO 사업을 따냈다. MSRA 체결은 국내 조선소 중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에 이어 세 번째다. HJ중공업이 장기적으로 미 군함 건조까지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군산조선소도 방산 기능을 일부 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HJ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군산조선소 인력은 블록 공장에서 일하는 정도의 규모이기 때문에 완성선 건조를 위해서는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며 "다만 연말쯤 인수 절차가 모두 마무리돼야 필요한 인력 규모나 활용 방안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