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수입이 반덤핑 관세 부과 이후에도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중국산 철강재 저가 공세에 대응해 관세 장벽을 세웠지만, 수출용 원재료를 관세 없이 들여올 수 있는 보세구역이 관리 사각지대로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철강업계 안팎에서는 보세구역이 관세 회피 통로로 악용되지 않도록 반입 물량의 실제 사용처를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세에도 中 후판 수입 늘어
1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산 후판 내수 판매량은 212만900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 증가했다. 선박 건조용 수요가 안정적인 데다 반도체 공장 등 대형 공사 수요가 더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같은 기간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30만6000t으로 15.0% 증가했다. 중국산 수입 증가율이 국산 판매 증가율을 두 배 가까이 웃돈 것이다. 정부는 저렴한 중국산 후판의 물량 공세가 국내 시장을 교란한다고 보고 지난해 11월부터 27.91~34.10%의 덤핑방지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올 들어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1월을 제외하고 매달 전년 동월보다 최대 72.5% 늘었다.
중국산 후판 수입이 관세 부과 이후에도 늘어난 데에는 보세구역을 활용한 관세 예외 구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수출 제품 제작용으로 보세구역에 반입되는 철강재는 관세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가령 조선소 독(dock·선박 건조장)이 보세구역으로 운영되는 경우, 중국산 후판을 들여와 선박을 만든 뒤 해외로 인도하면 국내 시장에 유통된 물량으로 보지 않는다. 관세가 겨냥한 중국산 후판이라도 보세구역에서 수출용 원재료로 쓰이면 국내 수입재로 과세되지 않는 것이다.
철강업계에서는 이 같은 구조가 반덤핑 관세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보세구역을 활용하면 중국산 철강재를 계속 들여올 수 있어, 반입 물량이 실제 수출용으로 쓰였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관세 장벽에 구멍이 생기기 쉽다는 문제 제기가 내부에서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열연 관세 시행되자 보세공장 늘리는 수입업체들
최근 최종 덤핑방지관세가 시행된 열연강판에서도 보세구역 활용 문제가 새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열연은 냉연·강관 등 하위 철강 제품의 원재료다. 자동차·조선·건설·기계 등 제조업 전반에 쓰인다. 국내 시장 규모가 약 10조원에 달하는 품목인 만큼, 저가 수입재 유입에 따른 파급력도 크다. 정부는 중국·일본산 열연 제품이 국내 산업에 피해를 준다고 보고 지난달 23일부터 각각 최대 33.10%, 33.43%의 덤핑방지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일부 열연 수입업체는 보세공장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세공장은 외국 물품을 원재료로 들여와 제조·가공할 수 있는 보세구역의 한 형태다. 수입 열연을 보세공장에 들여와 가공한 뒤 수출하면 덤핑방지관세를 부담하지 않는다. 열연처럼 가공·출하 경로가 복잡한 품목에서는 이 물량이 실제 수출용으로 쓰였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서류상 열연의 반입·반출 물량을 맞추는 것과 별개로, 여러 업체의 열연 물량이 같은 공간에서 가공·출하되면 수입산 원재료가 실제 수출용 제품에 투입됐는지, 국내 유통 물량과 섞이지 않았는지 현장에서 가려내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보세공장 안에 여러 업체의 열연 제품이 섞이면 수입산이 수출용으로 쓰였는지, 국내로 유통됐는지 확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철강재 가격이 회복돼도 중국산 반입이 줄지 않으면 국내 철강사의 실적 개선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 이달 말 국내 후판 유통가격은 t당 100만원, 열연 유통가격은 t당 96만원으로 연초보다 각각 9.9%, 20% 올랐다. 관세 부과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맞물리며 철강재 가격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보세구역을 통한 중국산 철강재 반입이 늘수록 관세 효과도 제한적이고 국산 물량의 설 자리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재 수요와 가격이 일부 살아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보세구역을 통한 중국산 철강재 반입이 늘면 실적 개선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저가 수입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관세를 부과한 만큼, 보세구역 반입 물량의 실제 사용처와 국내 반출 여부도 함께 점검해야 관세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