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사들이 유럽연합(EU)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쿼터(상한) 감소 폭이 약 20%로 확정되자 철강업계에선 '최악은 피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EU 전체 무관세 쿼터 감축 폭(46%)보다 낮은 수준으로 축소됐기 때문에 그나마 선방했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철강 수출 대상국 2위인 EU가 관세 장벽을 높이면서 수출 가능한 물량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철강업계의 위기감은 여전히 크다. 각 기업은 기업별 쿼터 배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수출 품목 점검, 품목별 예상 영향 파악 등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1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40여 철강 제조사가 가입된 한국철강협회는 전날 EU 집행위원회가 국가별 철강 수입 쿼터 조정을 발표한 직후 회원사별 영향 등 상황 파악에 착수했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기업별 유럽 수출 비중이나 (쿼터 축소에 따른) 품목별 영향 등을 협회 차원에서 취합 중이며 국가 배정 쿼터 내 업체별 배분 논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30일(현지 시각)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대체하는 신(新)철강 조치의 국가별 쿼터 물량을 발표했다. EU는 철강 30개 품목에 대해 연간 무관세 수입 쿼터를 기존 총 3382만톤(t)에서 1835만t으로 약 46% 줄였다. 무관세 쿼터 초과 물량에 적용되는 관세는 25%에서 50%로 일괄 인상된다. 새 조치는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한국 전용 쿼터는 기존 258만1000t에서 207만3000t으로 19.7% 감소했다. 약 51만t 줄어드는 것이다. 전체 감소 폭(46%)과 비교하면 한국은 감소 폭이 그 절반 미만이란 점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철강사 관계자는 "무관세 쿼터 축소 비율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낮아졌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정부가 EU와 '정부 대 정부'로 대응하며 노력을 많이 했고 철강업계가 같이 잘 도운 결과로 본다"며 "최악을 가정했을 때보다는 수출할 수 있는 여력이 더 생겼다"고 했다.
그러나 주력 수출 시장인 EU가 수입 규제를 강화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수출 감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지에 구축한 공급망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EU 철강 수출량은 약 324만t으로 전체 수출량의 11%를 차지했다.
포스코의 경우, 지난해 지역별 수출 비중 중 유럽은 15%로, 동남아시아(21%)에 이어 일본(15%)과 함께 공동 2위였다. 현대제철은 유럽에 자동차용 열연·냉연과 후판을, 동국제강은 컬러강판 제품을 주로 수출하고 있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관세 부담을 피할 수 있는 쿼터 안에서 수익성이 높은 제품, 기존 고객사 납품 물량, 자동차·배터리 등 현지 공급망과 연결된 제품을 우선 배치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철강업계와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총 쿼터 내에서 업체별 수출 물량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는 점이다. 지난해 각 사의 수출 통계 기반으로 기업별 비율이 조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주도 아래 기업별 쿼터를 논의하고 기업끼리도 상세 논의를 통해 쿼터를 나누고 수출 품목을 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산업통상부는 EU 쿼터 축소로 인한 수출 충격과 국내 시장 영향 최소화를 위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오전 철강업계 관계자들과 긴급 간담회를 갖고 품목별·기업별 영향 등을 점검했다. 김 장관은 "산업 간 연계 강화와 불공정 수입재 차단 등을 통해 우리 쿼터 감축 폭인 51만t 이상의 국내 수요를 창출하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