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000120)에 대한 화물연대의 교섭권을 인정하면서 경영계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법외 노조인 화물연대가 상급 단체의 위임을 받았다는 이유로 교섭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인사업자로 활동하는 화물차주의 '진짜 사장'이 CJ대한통운이라는 점이 확정될 경우, 화물연대 소속 트럭을 사용하는 전 산업계가 교섭 리스크로 인한 '물류 대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24일 중노위는 CJ대한통운이 제기한 교섭 요구 노조 확정 공고와 관련한 재심 사건에서 초심 결정을 유지하고 화물연대 측의 손을 들어줬다. 화물연대가 상급 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았으니, CJ대한통운은 화물연대와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 경영계 "화물연대, 우회 교섭 인정일 뿐… 법외 노조 독자 교섭 확산 우려"
물류업계를 비롯한 경영계는 이번 결정에 따라 화물연대가 독자적 교섭권을 확보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공공운수노조에 가입돼 있지만, 정부가 정식 노조임을 인정하는 '설립 신고필증'을 받지 못했다. 즉 법외 노조이지만, 이번 중노위 등의 판단으로 교섭 주체성을 갖춘 노조라는 점을 인정받았다는 것이 화물연대 측의 입장이다.
하지만 경영계는 중노위가 판단한 대상은 화물연대 자체가 아닌, 공공운수노조의 교섭 요구 권한과 이에 대한 위임 관계라고 보고 있다. 즉 화물연대의 '우회 교섭'이 통한 것일 뿐, 여전히 정식 노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화물연대의 독자적 교섭권을 인정했다는 해석이 확산될 경우, 상급단체의 권한 위임만으로도 노조 설립 신고도 돼 있지 않은 산하 조직이 사실상 독자적 교섭 주체처럼 활동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 택배 기사보다 종속성·전속성 약한 화물차주… '사용자성' 기준 혼란
화물연대와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교섭권이 인정되는 데 대해서도 경영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화물연대에 속해있는 일반 화물차주들은 대부분 개인사업자다. 특정 화주에 전속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복수의 화주와 거래하거나, 스스로 운송 물량을 선택할 수 있다. 대체 운전자를 활용하거나 또 다른 영업 활동을 병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때문에 영업 및 근태와 관련해 자율성이 보장되는 이러한 개인사업자에 대해서도 CJ대한통운을 '진짜 사장'으로 봐야 하는지 논란이 생기는 것이다.
택배 기사도 이전에 비슷한 논란이 있었지만, 택배 기사는 한 기업에 대한 물량 의존도가 높아 택배 기업들의 사용자성이 대체로 인정되는 분위기다. CJ대한통운 역시 택배 기사에 대한 사용자성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화물차주는 다르다는 것이 물류업계의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노동법상 사용자성 판단의 핵심 요소인 종속성과 전속성 측면에서 택배 기사와 화물차주를 동일 선상에서 보기 어렵다"며 "이번 판단이 화물연대 전체 조합원에 대한 원청 사용자성 인정의 근거로 활용될 경우, 그동안 축적된 노동법상 사용자성 판단 기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 시멘트·철강·자동차 등 도미노… '상시 교섭' 물류 리스크 우려
CJ대한통운과 화물연대의 교섭 여부는 국내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화물연대가 노조 지위를 인정받고 교섭에 나서면, 화물연대 소속 트럭을 사용하는 물류회사들은 물론 각종 대기업을 대상으로도 비슷한 요구가 잇따를 수밖에 없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컨테이너 운송, 시멘트, 철강, 자동차, 건설자재 등 산업 물류 전반에 분포해 있다.
이미 노란봉투법으로 교섭 대상이 무한대로 늘어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화물연대 사례로 더욱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류 대란이 생길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4월 화물연대가 편의점 CU의 물류센터를 봉쇄하고 파업하면서 수도권 CU의 물품 공급이 중단된 예가 있다. CU가맹점주협의회는 이 파업으로 102억80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봤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교섭권의 형식적 위임이 노조의 법적 지위에 대한 판단을 우회하는 경로로 보편화할 수 있다"며 "사용자성에 대한 충분한 법적 검토 없이 교섭 요구가 인정되면 원청 기업은 상시적 교섭 부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CJ대한통운은 중노위의 결정문을 검토한 뒤 후속 대응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의 구체적 판단 근거가 담긴 결정문은 30일 이내에 송달된다. 중노위 결정문을 받은 기업은 15일 안에 행정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