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로봇 기업 유니트리의 항저우 본사에서 2024년 말 작은 실험이 시작됐습니다. 유니트리의 사족보행 로봇 위에 한국 로봇 스타트업 뉴빌리티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얹는 작업이었습니다.
유니트리는 한국 시장에서 단순히 로봇을 파는 것을 넘어, 산업 현장에 실제로 넣어 굴릴 수 있는 솔루션 파트너를 찾고 있었습니다. 뉴빌리티는 배달·순찰 로봇에서 쌓은 자율주행 기술을 사족보행·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넓히려던 시점이었습니다. 서로의 필요가 맞물리면서 1년 반가량 기술 검증과 시연이 이어졌고, 두 회사는 지난 25일 전략적 양해각서(MOU)를 맺으면서 산업 현장용 로봇 솔루션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협력의 핵심은 유니트리 로봇에 뉴빌리티의 '자율주행 두뇌'를 붙이는 것입니다. 뉴빌리티의 자율주행 모듈 '뉴온(NeuOn)'은 기존 로봇에 장착해 자율주행 기능을 구현하는 키트입니다. 로봇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이동 경로를 짜고, 장애물을 피해 스스로 이동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여러 대의 로봇을 한꺼번에 관리하는 관제 플랫폼이 붙으면, 유니트리의 사족보행·휴머노이드 로봇을 순찰, 탐지, 이송, 특수 임무 등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먼저 문을 두드린 건 뉴빌리티였습니다. 당시 뉴빌리티는 바퀴형 배달·순찰 로봇을 개발·생산하고 있었지만, 여기서 쌓은 자율주행 기술을 바퀴 달린 로봇에만 묶어둘 필요는 없다고 봤습니다. 사족보행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산업 현장 공략에 나선 유니트리의 움직임은 뉴빌리티에 새로운 협력 기회였습니다. 제조·건설 현장, 재난 지역처럼 바닥이 고르지 않거나 장애물이 많은 곳은 바퀴형 로봇만으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뉴빌리티는 유니트리 로봇에 자율주행 '두뇌'를 얹어 자체 기술의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유니트리도 넘어야 할 문턱이 있었습니다. 로봇 본체를 잘 만드는 것과 실제 산업 현장에 넣어 운영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공장·보안시설·건설 현장에 로봇을 투입하려면 현장별 동선, 안전 기준, 임무 방식, 원격 관제 체계까지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유니트리에 필요했던 것은 하드웨어를 산업 현장에 맞는 서비스로 바꿔줄 운영 경험이었고, 뉴빌리티는 국내 여러 현장에서 이 과정을 시험해온 회사였습니다.
뉴빌리티 로봇은 '지구 두 바퀴'에 가까운 실전 주행 경험을 쌓고 있었습니다. 전국 142곳에서 바퀴형 자율주행 로봇 305대가 연간 4만건이 넘는 배달·순찰 서비스를 수행했습니다. 누적 주행거리는 7만8497㎞로, 이 운영 데이터는 자율주행 성능과 관제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데 다시 활용됩니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현장별 동선과 임무 방식, 원격 대응 체계도 정교해지는 구조입니다.
이들은 지난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AWS(아마존웹서비스) 서밋' 전시회에서 그간 검증해온 협력 모델을 처음 대중에 공개했습니다. 유니트리의 사족보행 로봇 A2에 뉴빌리티의 자율항법 모듈을 장착한 '뉴트렉'이 지정된 경로를 자율주행하며 관제 시스템과 연동되는 구조를 시연한 겁니다. 이를 기반으로 두 회사는 우선 한국 시장에서 산업시설, 건설 현장, 보안·정찰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로봇 솔루션을 개발하고, 향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협력 범위를 넓혀갈 예정입니다.
업계에선 이들의 협력을 로봇 경쟁의 무게중심이 현장 검증과 레퍼런스 확보로 옮겨가는 흐름으로 평가합니다. 사족보행 로봇과 휴머노이드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지만, 많은 로봇 기업이 갈급해하는 건 실제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작동한 사례입니다. 한국 시장을 중심으로 시작되는 이번 실험이 실제 세계 곳곳의 현장에서 통하는 로봇 서비스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업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