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종합상사 '빅 5' 중 3곳은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30곳의 겸직 비율(35.7%)보다 훨씬 높은 비중이다. 주요 상장사들이 최근 기업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종합상사들의 움직임이 더딘 것이다.

25일 종합상사 5사가 최근 각각 공시한 2025 사업연도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삼성물산과 SK네트웍스는 각각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은 현재 최중경 사외이사가 맡고 있다. 삼성물산은 2021년부터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SK네트웍스는 채수일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SK네트웍스는 2019년부터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해 왔다.

왼쪽부터 포스코인터내셔널 송도 본사, LX광화문빌딩, 현대코퍼레이션 본사. /각 사

반면 포스코인터내셔널·LX인터내셔널·현대코퍼레이션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이 분리돼 있지 않다.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며 대표이사 중심으로 이사회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그룹 산하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계인 대표이사 사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공시한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따르면,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배구조 핵심 지표 15개 항목 중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인지 여부'와 '최고경영자 승계 정책 마련 및 운영' 지표를 준수하지 않아 준수율 86.7%를 기록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은 "글로벌 투자와 에너지 등의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하는 비즈니스 특성상 경영 집행과 관리 감독 간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하고자 대표이사가 의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X인터내셔널은 구혁서 대표이사 부사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다. 지배구조핵심지표 준수율은 4개 항목 미준수로 73.3%를 기록했다. LX인터내셔널 측은 "다양한 업종을 영위하는 업종 특성상 사업 이해도, 전문성, 경영 효율성의 중요성을 고려해 사외이사가 아닌 대표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코퍼레이션은 범현대가의 정몽혁 대표이사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아 오너 중심으로 이사회가 운영되고 있다. 현대코퍼레이션은 지배구조 핵심 지표 중 6개 항목을 준수하지 않아 준수율이 60%에 그쳤다. 현대코퍼레이션은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이유로 신속한 의사결정과 정책의 연속성을 꼽았다.

이사회는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자, 경영진을 견제하는 감독 기구다. ISS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은 이사회 의장직과 최고경영자(CEO)직을 분리하고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것을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으로 정하고 있다. CEO와 이사회 의장 분리를 이사회 독립성을 판단하는 핵심 요소로 보는 것이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국내 상장사 204곳 중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곳은 109곳(53.4%)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달 19일 기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30곳(삼성전자 우선주와 KODEX 200 ETF를 제외한 28곳)으로 범위를 좁히면 대표이사·의장 겸직 비율은 35.7%(10곳)로 더 낮아진다. 외국인 투자자 수요가 집중되는 시총 상위 기업일수록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하는 것이다. 다만 대표이사가 아닌 사내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는 기업 3곳을 더할 경우, 사내이사(대표이사 포함)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비율은 46.4% 수준으로 높아진다.

지배구조 전문가들은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한다고 해서 지배구조가 취약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경영진을 감독하고 견제하는 이사회 본연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분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본래 이사회의 기능이 경영진 감독자 역할인데, 감독하는 기구(이사회)의 수장으로 감독을 당하는 쪽의 수장(대표이사)이 들어가 있으면 곤란하다"고 했다.

대표이사나 사내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은 기업 중 일부는 선임(先任) 사외이사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사외이사 중 대표자 역할을 하는 선임 사외이사를 선정하는 것이다. 선임 사외이사는 경영진에게 주요 현안 보고를 요구하거나 사외이사 의견을 모아 경영진에 전달하는 역할 등을 한다. 삼성그룹 산하 삼성SDS와 삼성SDI, 현대차그룹의 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포스코인터내셔널·LX인터내셔널·현대코퍼레이션은 선임 사외이사 제도도 도입하지 않고 있다.

기업들도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할 때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은 "의장 겸임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영진 견제 기능 약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을 과반보다 높게 유지하는 등 사외이사 중심 감독 메커니즘을 가동하고 있다"고 했다.

김희경 법무법인 도영 대표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면서 의사결정의 주도성을 가져가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 형태에선) 의사결정 자체가 투명하지 않다"며 "혼재된 이사회 구조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