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액화석유가스(LPG) 양대 수입사인 SK가스(018670), E1(017940)이 해외 LPG 트레이딩(중계거래) 사업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한다. 트레이딩 사업은 인간인 트레이더들의 순간적인 판단력과 때로는 운에 따라 실적이 크게 갈리는 영역이다. AI가 과거 거래 패턴, 시장 지표 등을 학습해 트레이더가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도록 일종의 'AI 참모'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22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SK가스는 글로벌 트레이딩 담당인 싱가포르 지점을 중심으로 트레이딩 업무에 필요한 AI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LPG 트레이딩 사업은 국가별 가격 차이, 수급 조절, 시차 등을 기반으로 여러 나라와 거래하는 중계 무역에 뜻한다.
SK가스의 LPG 트레이딩 조직은 5명 남짓이다. 이들은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으며 회사 전체 실적을 견인한다. 올해 1분기 LPG 사업부 영업이익은 1623억원으로, 전년 동기(615억원) 대비 164% 뛰었는데, LPG 트레이딩으로 상당한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LPG 트레이딩은 변수가 많아 그간 베테랑 트레이더들의 동물적 감각과 운이 실적을 좌지우지해왔다. SK가스는 과거 베테랑 트레이더들이 수익을 냈던 패턴, 글로벌 수급 데이터 등을 AI를 학습시켜 트레이더가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E1 역시 LPG 트레이딩, 물류, 에너지 조달 업무를 고도화하기 위해 AI 전환(AX)에 착수했다. 지난 3월 AI 엔지니어를 채용해 업무 시스템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각 부서에서 AI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하는 역할이다.
해외 트레이딩 부문에서도 AI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E1의 트레이딩 조직은 10명 내외로, 싱가포르에 지점을 두고 있다. E1의 1분기 전체 매출 중 해외 매출이 58%에 달할 정도로 사업 기여도가 크다.
E1은 올해 1분기 해외 LPG 트레이딩 사업에서 손실을 봤다. 중동 지역에 재고를 쌓아뒀는데,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돼 주요 거래가 막힌 영향이다. 트레이더가 내린 판단이 SK가스, E1의 해외 실적을 가른 셈이다.
해외 에너지 기업들도 트레이딩 과정에서 변수를 줄이기 위해 AI를 적극 활용한다고 한다. AI 기상·에너지 예측 플랫폼을 활용해 수요국의 전력 수요를 미리 읽거나, 실시간으로 해상 물류 상황을 파악해 최적의 경로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수요국의 경제 지표 등을 분석해 선제적으로 물량을 조절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한다.
보수적인 에너지 업계가 기민하게 움직이는 배경에는 각 그룹 총수들의 'AI 드라이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1일부터 사흘간 열린 '2026 뉴이천포럼'에선 AI를 핵심 의제로 올렸다. 최 회장은 "360도 전방위로, 전속력으로 AI 전환에 돌입해야 할 때"라며 경영진과 구성원의 신속한 실행을 주문했다.
E1도 구자은 LS그룹 회장의 주도로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구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AI로 작성해 발표할 정도로 신기술 접목에 적극적이다. 그는 "AI를 제조 및 업무 혁신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며 전사적인 AX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를 활용해 해상 물류 경로 최적화, 기온에 따른 수요 변화, 수요국 경제 지표 등을 쉽게 분석할 수 있다"면서도 "아직 초기 단계로 실효성이 얼마나 될지는 지켜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