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5개 발전 자회사(한국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의 통폐합 논의 과정에서 발전 공기업 노조가 '완전 통합 법인' 방안에 환영의 뜻을 밝힌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통 노조는 통폐합에 반대하기 마련인데 걱정과 달리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발전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일자리를 사수하려는 직원들의 이해관계와 정부의 정책 방향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2040년 탈석탄을 목표로, 남은 석탄발전소 61기를 폐쇄하기로 했다. 국내 석탄 발전소 중 80% 이상이 발전 공기업 소유다. 상당수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인 상황에서 통합 법인이 재생에너지 투자를 대폭 늘리면, 새 일자리가 늘어나 유연하게 직무 전환이 가능할 것이란 게 노조 측 셈법이라는 것이다.

18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발전 공기업 역할 재정립 연구용역 중간 보고회'에서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이인아 기자

19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전날 열린 '발전 공기업 역할 재정립 연구용역 중간 보고회' 토론에 참석한 노동계 인사 3명은 용역 기관이 권고한 '완전 통합' 안에 모두 찬성의 뜻을 밝혔다.

노동계에선 남태섭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 수석부위원장, 송민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 제용순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애초 발전 업계에서는 발전 5사 통폐합 시 중복 업무에 따른 구조조정, 지역 재배치 등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 발전사 노조가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공공기관 통폐합은 극심한 노사, 노노 갈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발전사 노조는 거대한 통합 법인이 만들어져야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에너지 산업 변화 과정에서 노동자, 지역사회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석탄발전소를 폐쇄할 경우 남는 인력은 재생에너지 분야로 재조정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발전 5사 체제에서는 재생에너지 투자가 더딘 실정이다. 지금껏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민간 사업자 위주로 시장이 형성됐다.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의 90% 이상이 민간 소유다.

삼일회계법인이 작성한 용역 보고서에는 통합 법인 본사가 주도적으로 대규모 해상 풍력 사업 관리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권고가 들어 있다. 해상 풍력은 기가와트(GW) 규모 프로젝트로 장기 전략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해상 풍력 시장에 거대 통합 공기업이 뛰어들어 설치, 정비 등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면, 기존 발전소 인력들의 해고 없는 업무 전환이 가능하다는 게 노조 측 계산이다.

다만 발전 공기업이 해상 풍력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적은 점은 우려 요소다. 전력연맹에 따르면 발전 5사의 해상 풍력 전담 인력은 50명 미만으로 추산된다. 덴마크 에너지 기업인 오스테드가 하나의 해상 풍력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최소 100명을 투입하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시장이 민간 기업 위주로 형성돼 기술 격차도 크다. 지난해 말 기준 전기위원회를 통해 발전 사업 허가를 받은 해상 풍력 발전 사업 허가는 35GW인데, 이 중 민간 기업이 91%를 차지했다. 절반 이상은 영국, 덴마크 등 해상 풍력 강국에서 온 기업이 가져갔다.

발전 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화력 발전소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해상 풍력 설치, 정비 기술을 익히려면 민간 기업과 협업할 수밖에 없다"며 "민간 기업 입장에선 공기업이 강력한 경쟁자가 되는 구도여서 사업에 한계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5개사에서 발생하던 사고가 (통합 법인)한 곳에서 발생하면서 사고가 잦은 것으로 외부에 보일 수도 있다"며 "기술, 경험이 없는 사업을 새롭게 추진해야 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