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 등 대기업이 하청 업체 노동자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갖춘 사용자'라는 판단이 나오면서 원청과 하청 간 교섭 테이블이 무한대로 확장될 가능성이 커졌다. 고정 월급을 받지 않는 특수 고용직은 물론, 간접적 협력 업체들에 대한 교섭권까지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되면,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에 대한 요구까지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 노조와도 극심한 갈등을 겪는 부분인 만큼, 기업들은 1년 내내 교섭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난 15일 오후,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현대차 남양연구소와 울산·아산·전주 공장 사내 하청, 보안 업체, 구내식당, 자동차 판매 대리점 등에서 생산·경비·보안·조리·판매 업무를 담당하는 노조원 1675명의 '진짜' 사장이 현대차라는 취지의 판정을 내렸다. 금속노조가 이들을 대표해 현대차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현대차가 '사용자성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자, 울산지노위가 이를 시정하라고 한 것이다.
이로써 대기업들의 교섭 테이블이 무한대로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난 3월 10일부터 이달 5일까지 3개월간 431개 원청이 1137개 하청 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소속된 조합원은 총 16만1830명에 달한다. 노란봉투법은 근로 계약을 직접 맺지 않았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원청을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개정 노조법이다.
특수 고용직에 대해서도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됐다는 점은 혼란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이번에 현대차에 교섭을 요구한 10개 노조 중에는 고정 월급을 받는 정규직이 아닌, 차량 판매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카마스터 노조가 포함돼 있다.
특히 택배 업계가 당장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독립된 개인 사업자인 택배 기사는 대표적 특수 고용직이다. 지난 4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소속 택배 기사들에 대한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의 사용자성이 인정돼 CJ대한통운은 재심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제조 공정 외 비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협력 업체들의 요구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중앙노동위원회도 급식, 청소 등 협력 업체들이 한화오션과 직접 교섭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직접적인 생산 원·하청 관계가 아니라 간접적인 지원 협력 관계까지 단체교섭의 상대방을 확장하면 단체교섭을 둘러싼 산업 전반의 혼란이 확대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원·하청 간 교섭 테이블이 펼쳐지면 협상 주제는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으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SK하이닉스(000660)에 반도체·부품을 운반하는 하청 기업 피앤에스로지스 노조가 원청에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천문학적 이윤에 본인들도 기여했으니, 성과급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HD현대중공업 하청 노조도 지난 3월 "원청은 사내 하청뿐 아니라 사외 협력 업체에도 성과급을 지급하라"며 울산 조선소 앞에서 집회에 나선 바 있다. 결국 1년 내내 교섭 정국을 벗어나기 어려워진다는, 노란봉투법 도입 전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이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성과급으로 지난해 순이익의 30%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파업 준비 수순을 밟고 있다. 여기에 금속노조는 전날 현대차그룹을 향해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위아 등 그룹사 역시 원청 교섭이 즉각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원·하청 간 교섭이 본격화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현대차 사례의 경우, 울산지노위는 한 달 뒤 구체적으로 어떤 하청과의 교섭 필요성을 인정했는지 노사에 판정문을 발송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이를 수령한 뒤 불복할 경우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중노위의 인정 판정을 받으면 원청의 교섭 의무가 발생하지만, 기업은 판정서 송달 15일 안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