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선업계가 2019년 이후 끊겼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자국 내 건조 재개를 추진한다. 에너지 수송을 한·중 조선소에만 맡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일본은 장기간 공백으로 약해진 LNG선 생산 체계를 복원하기 위해 한국 조선업계와 기술 협력에 나설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한일 조선 협력이 중국 조선업을 견제하는 카드가 될 수 있지만, LNG선 핵심 건조 노하우를 이전하는 것에는 부담이 적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이마바리조선·가와사키중공업·나무라조선은 2035년을 전후로 일본 내 LNG 운반선 건조를 재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연간 3~5척을 목표로, 3사가 기술과 인력을 공유하고 숙련 용접공을 서로 지원해 생산 체계를 다시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조선업 재건을 핵심 정책 과제로 내건 일본 정부도 일본산 LNG 운반선 구매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이 LNG선 건조 부활을 선언한 데에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핵심 수송선을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일본은 발전용 연료와 도시가스 원료로 쓰이는 LNG의 98%를 수입에 의존한다. 현재 일본으로 LNG를 운송하는 선박은 약 100척으로, 선박 수명을 20년으로 보면 매년 5척 안팎을 새로 지어야 기존 수송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일본은 세계 3위 해운국인 만큼, 일본 해운사들이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많이 발주하는 것을 일본 정부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LNG선 내준 日, 선박 수주 점유율 2%로 밀려
문제는 일본 조선업 기반이 과거와 180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일본 조선사들은 1980~1990년대 LNG선 시장을 주도했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 조선사들이 고부가 선박 중심으로 기술 투자를 확대하면서 우위를 내줬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 세계 선박 수주량에서 일본 점유율은 2%에 그쳤다. 중국은 68%, 한국은 21%였다. LNG 운반선만 놓고 보면 올해 6월 초까지 발주된 53척 가운데 한국 조선 3사가 34척(64%), 중국 조선사가 19척(36%)을 수주하며 한·중이 시장을 양분했다.
일본이 LNG선 시장을 한국에 내준 건 주류 기술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 조선사들은 선체 안에 둥근 독립 탱크를 싣는 모스형 화물창과 증기터빈 추진 방식에 강했지만, 적재 효율과 연비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사이 한국 조선사들은 선체 내부에 화물창을 밀착시키는 멤브레인형 화물창과 LNG·연료유를 함께 쓰는 이중 연료 엔진을 적용해 효율을 높이며 수주 경쟁력을 키웠다.
일본 대형 조선사들이 장기 불황을 거치며 조선업 투자를 줄인 점도 격차를 키웠다. HD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등 국내 대형 조선사가 LNG선을 핵심 고부가 선종으로 키우는 동안, 일본에서는 미쓰비시중공업·가와사키중공업 등 대형 업체들이 사업을 다각화하며 조선업 비중을 낮췄다. 상선 물량도 이마바리조선 등 중견 조선사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첨단 선박 기술과 숙련 인력 기반이 함께 약해졌다.
◇멤브레인형 경험 부족한 日… 韓 협력 요청 가능성도
업계에서는 일본이 단기간에 LNG 운반선 생산 체계를 되살리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LNG 운반선은 영하 163도 안팎의 극저온 상태로 액화한 천연가스를 운송해야 해 일반 상선보다 설계·건조 난도가 높다. LNG를 담는 화물창과 단열재 시공, 누설을 막는 정밀 검사와 품질 관리가 핵심이다. 한국 조선사들은 연간 수십척의 LNG 운반선을 반복 건조하며 화물창 시공과 품질 관리 경험을 쌓았지만, 일본은 시장 주류인 멤브레인형 LNG선을 지어본 경험이 부족하다.
일본 조선사가 LNG선 건조에서 국내 인력의 도움을 받은 사례도 있다. 앞서 이마바리조선은 2014년 스페인 선사로부터 당시 최신 사양의 화물창과 고효율 엔진을 적용한 LNG 운반선을 수주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멤브레인형 화물창과 추진 시스템을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조선업 구조조정 이후 현장을 떠난 고숙련 인력을 스카우트해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본 조선사들은 LNG선 건조 노하우가 풍부한 한국 조선업계에 기술 지원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중국 조선업을 견제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일본은 세계 3위 해운국으로 선박 발주 수요가 큰 만큼, 국내 조선소 입장에서도 협력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은창 연구위원은 "중국이 조선 물량을 상당 부분 가져가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 등 다른 조선 국가들이 힘을 모아 견제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은 LNG선 같은 고부가 선박에 강점이 있고, 일본은 표준 선형과 기자재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는 만큼 각자 강점을 살리는 방식의 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협력 범위가 화물창 시공과 품질 관리 등으로 넓어지면 한국 조선사들이 쌓아온 핵심 건조 노하우가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과의 협력은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한국의 LNG선 기술력이 앞서 있는 만큼 협력 범위는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며 "서로 강점을 보완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선별적 협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