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에 참여하려는 HD현대중공업에 대해 과거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를 들어 추가로 보안 감점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HD현대중공업은 감점 적용 기간을 두고 방사청이 뒤늦게 기준을 바꿔 피해를 받게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4일 방위산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지난 2일 HD현대중공업이 제기한 가처분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에 제출한 서면을 통해 HD현대중공업에 추가 보안 감점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방사청은 서면에서 "해양정보함 사업의 제안서 평가에서 채권자(HD현대중공업)의 보안사고 감점 적용 기간은 2023년 12월 8일부터 3년 간이라고 판단했다"며 "이 사례를 보면 이 사건 입찰(KDDX)에 참여한 HD현대중공업은 감점 적용 대상에 해당한다"고 적었다.
KDDX는 선체와 전투체계, 통합마스트 등을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7조8000억원 규모의 차세대 구축함 사업이다. 국내 함정 사업 최초로 통합 전기식 추진체계를 적용해 6000t급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 2012년 개념설계는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 2020년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현재 입찰이 진행 중인 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이다. 소수점 단위로 수주 성패가 갈릴 수 있기 때문에 만약 HD현대중공업이 보안 감점을 받을 경우 사업을 수주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HD현대중공업이 보안 감점을 받은 것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3년 이 회사 임직원 9명은 대우조선해양의 KDDX 개념설계도 등 해군 기밀 자료 12건을 불법 취득해 공유했다는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로 2020년 기소됐다. 8명은 2022년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나머지 1명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법원은 일부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봤다. 이에 검찰이 항소했고, 1명은 2023년 12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8명이 유죄 판결을 받은 2022년 방사청은 최종 형 확정일로부터 3년 간 보안 감점을 적용한다는 규정에 따라 HD현대중공업에 1.8점의 감점을 부과했다. 방사청은 나머지 1명의 유죄 판결에 대해서도 1년 전 8명에 대한 판결과 하나의 사건으로 봤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2월까지만 보안 감점이 유효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방사청이 감점 적용 방침을 바꾸겠다는 뜻을 보인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당시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HD현대중공업에 대해 올해 12월까지 1.2점의 감점을 추가로 적용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앞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 HD현대중공업 임직원 8명의 사건과 나머지 1명의 사건을 별개의 혐의로 보기로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당시 석종건 방사청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해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보안 감점을 추가 적용하겠다는 것은 실무 부서의 의견에 불과하다"며 앞서 정례브리핑에서 발표한 내용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방사청은 이번 서면 제출 전까지도 보안 감점을 올해 말까지 적용할 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 1일 법정에서 재판부가 KDDX 평가에서 보안 감점을 적용할 것인지 물었지만, 방사청은 더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방사청의 모호한 입장에 HD현대중공업은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KDDX 사업의 입찰이 시작되기 전부터 보안 감점이 적용되는지 수 차례에 걸쳐 문의했지만, 방사청은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에도 해양정보함 기본설계 사업에서 보안 감점을 부과 답은 뒤 이유에 대해 문의했지만, 방사청은 답변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무기 사업 입찰은 소수점의 격차로 당락 여부가 결정된다"며 "보안 감점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 방사청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들은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고, 경쟁의 투명성도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