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의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영역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서 액화석유가스(LPG)와 암모니아를 싣는 VLGC·VLAC(초대형 가스 운반선·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로 넓어지고 있다. 미국발 LPG 수출 증가와 중동 리스크로 LPG 운반선 운임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자 선사들의 신조 발주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사는 올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VLGC·VLAC 물량의 약 75%를 수주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VLGC·VLAC는 화물창·가스 처리 시스템 등 기본 설계가 유사한 계열로, 일반 상선보다 선가와 기술 난도가 높은 고부가가치 선종이다. 최근에는 LPG와 암모니아를 모두 실을 수 있거나 향후 암모니아 운송에 대응 가능한 복합 사양 선박으로 발주 흐름이 옮겨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에도 가스선 부족 장기화
29일 선박 중개·해운 시황 업체 펀리스에 따르면 5월 셋째주 8만4000㎥급 VLGC 스폿 운임은 월 600만달러(약 90억원)로, 전주보다 30만달러(약 4억5000만원) 올랐다. 이를 단순 환산하면 하루 약 20만달러(약 3억원) 수준이다. 펀리스는 미국 걸프만에서 출발하는 6월 선적 물량을 실을 선박이 부족해 최근 체결된 일부 계약 운임이 t당 기준으로 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중동 해협의 긴장 완화로 유가와 선박 연료비 부담은 다소 낮아졌지만, 가스 운반선 운임은 쉽게 내려오지 않고 있다. 미국 걸프만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LPG 물동량이 늘어난 데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운항 불확실성으로 선사들이 선대 재배치에 나서면서, 실제 투입 가능한 선박이 부족해진 영향이다. 같은 물량을 실어도 운항 거리가 길어지면 필요한 선박 수가 늘어나는 만큼, 미국발 아시아향 LPG 수출 확대는 운임을 떠받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걸프만과 동부 해안에서 오는 6월 선적 기준으로 체결된 물동량 계약은 약 20건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4월과 5월보다 오히려 각각 30건가량 줄어든 수준이다. 운송 수요는 많지만 화물을 실을 배를 맞추기 어려운 시장 상황이 이어지면서 계약 물량도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선복 부족이 최소 7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韓 22척 싹쓸이
LPG 운송 수요 증가에 따라 신조 발주도 잇따르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올해 발주된 VLGC·VLAC는 총 36척으로, 작년 전체 발주량(57척)의 63%를 이미 채웠다. 국가별로는 한국 27척, 중국 8척, 일본 1척 순이다.
특히 이달 들어 국내 조선사의 수주가 집중됐다. HD현대중공업이 VLGC 9척, HD현대삼호가 VLGC 2척·VLAC 6척, 한화오션이 VLAC 3척을 수주했다. 여기에 삼성중공업도 26일 VLGC 2척을 추가로 따내면서 올해 한국 조선사의 VLGC·VLAC 누적 수주량은 29척으로 늘었다.
이들 선박은 화물창·가스 처리 시스템, 연료 추진 기술 등 건조 난도가 높다. 암모니아 운반선은 독성·부식성에 대응하는 저장·운송 기술도 갖춰야 한다. 신조 선가는 최근 계약 기준 척당 1억2000만달러 안팎으로 일반 벌크선·탱커보다 높아 국내 조선사 입장에서는 독을 채울 만한 선종으로 꼽힌다. 중견 조선사인 대한조선도 향후 VLGC 수요가 더 늘 것으로 보고 이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조선사도 가스 운반선 수주를 늘리고 있지만, VLGC와 VLAC는 일반 상선보다 건조 난도가 높고 안전 설비 요구도 더 까다로워 검증된 건조 경험과 납기 안정성을 중시하는 선주들은 아직 한국 조선사를 선호하는 분위기"라며 "암모니아 운송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면 VLAC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