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곧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정유사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인 정제 마진은 당분간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동 지역의 정제 설비가 복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고, 각 국의 비축 수요도 늘어 연말까지 원유 공급 부족이 지속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싱가포르 복합 정제 마진은 배럴당 20달러선 중반에서 형성돼, 손익분기점인 4~5달러를 크게 웃돌고 있다. 이는 올해 1분기 평균치인 배럴당 9달러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그래픽=정서희

정제 마진이란 정유사가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경유 등 다양한 석유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했을 때 얻는 순이익을 의미한다. 국내 정유사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석유 제품 물류 중심지인 싱가포르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다.

정제 마진이 상승한 것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골자로 하는 원칙적 합의에 근접했다는 소식에 국제 유가는 최근 약세로 돌아섰지만, 전쟁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배럴당 98달러로 집계됐다.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3월 23일 169달러까지 올랐다가 100달러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나 여전히 연초 60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60% 오른 상태다. 이날 브렌트유 근월물은 96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근월물은 90달러에 마감했는데, 연초와 비교하면 30% 넘게 오른 가격이다.

정제 마진이 강세를 보이면서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올해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5조963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했던 2022년 2분기에 7조5536억원의 합산 영업이익을 기록한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치에 해당된다.

정제 마진 개선과 수익 증가는 유가 상승으로 재고 효과가 나타난 데 따른 것이다. 정유사들이 과거 낮은 가격에 사들인 원유가 시차를 두고 석유 제품 가격에 반영돼 이익이 늘어나는 이른바 '래깅 효과(Lagging Effect)'가 극대화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재개돼도 최소 연말까지는 정제 마진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석유 기업들은 전세계적으로 수익성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제 설비를 폐쇄하고 있었다. 지난해만 해도 페트로이네오스, 셸, BP 등 글로벌 석유 기업들은 미국, 유럽 지역 전체 설비의 3%에 해당하는 설비를 폐쇄했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주요 산유국의 핵심 석유 시설 역시 공습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올해 2분기 정제 마진은 배럴당 15~20달러 수준으로 전망된다"며 "중동, 러시아 지역의 정제 설비 피해 규모는 전 세계 생산량의 5% 수준이며, 정상 가동까지 향후 1년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급이 줄어들고 있지만, 각 국이 원유 재고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3월 이후 글로벌 석유 재고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4월 말 기준 글로벌 석유 재고는 79억배럴로 급감했다. 3월과 4월 재고 감소 규모는 각각 1억2900만배럴, 1억1700만배럴이었다.

다만 정유업계 일각에서는 '역(逆) 래깅 효과'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향후 원유 공급이 늘어나 국제 유가가 계속 약세를 보일 경우 현재 비싸게 확보하고 있는 원유의 가치가 떨어져 재고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두 달 넘게 시행 중인 '석유 최고 가격제'로 인한 손실 보전 문제도 진행 중이다. 정부와 정유업계 간 보전 기준을 둔 시각차가 커 실제 보상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이는 향후 유가 하락기가 도래했을 때 업계의 유동성 부담을 더할 수 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논의가 구체화하면서 수급 불안 심리는 다소 진정된 분위기"라며 "국제 유가의 변동성과 정제 마진 흐름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