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 산업 구조 개편 논의가 당초 계획보다 지연되면서 구조조정 동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마지막 퍼즐로 남은 울산 산업단지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완공을 앞두고 기업 간 입장 차이를 줄이지 못해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울산 산단에서는 에쓰오일과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 등 3사가 설비 감축 등을 포함한 구조 개편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당초 정부가 제시한 최종안 제출 기한인 올해 1분기를 넘기자, 이들 업체는 마감 기한을 정하지 않고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 /에쓰오일 제공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3일 열린 1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연내 최종안 도출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해관계자별 입장 차이와 중동 정세에 따른 원가·수급 불확실성으로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울산 산단에서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가 다음 달 설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에쓰오일은 울산 산단에 9조원 이상을 투입해 대규모 석유화학 단지를 조성 중이다. 설비 완공 후 시운전 등을 거쳐 내년부터 상업 가동에 돌입할 예정이다.

샤힌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연간 180만톤(t) 규모의 에틸렌이 생산된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 개편 논의가 에틸렌을 생산하는 나프타분해설비(NCC) 감축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에쓰오일만 증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에쓰오일과 다른 업체들이 이해관계가 엇갈려 구조조정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

울산 산단의 구조조정 방식을 두고 일부 생산 라인 통합과 설비 교환, 합작 법인(JV) 설립 등 여러 방안이 거론됐지만, 노후 설비의 지분 평가 단계부터 논의는 수개월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는 신규 설비지만,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의 NCC는 30년 넘게 가동됐다. 노후 설비라도 자산 가치는 조 단위로 평가돼 양측의 셈법이 복잡한 상황이다.

LG화학과 GS칼텍스가 참여하는 여수 2호 프로젝트도 연내 최종 승인을 목표로 세부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지배 구조 문제 등을 두고 최종안 도출이 지연되고 있다.

논의가 길어질수록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효과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종안 제출 이후 사업 재편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첫 사업 재편 계획서를 제출한 대산 1호 프로젝트(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의 경우 정부 승인에만 3개월이 걸렸고, 현재도 기업 결합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내 통합 법인 출범을 가정하면 최종안 제출부터 법인 설립까지 최소 1년이 필요하다.

최종안을 먼저 제출한 기업이 손해를 볼 것이라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사업 재편으로 NCC 가동률이 떨어진 상태에서 석유화학 시장의 상황이 개선될 경우 먼저 감산한 기업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지난 2월 발발한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해 석유화학 업계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나프타 가격)가 오르면서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대산 1호에선 오는 9월부터 롯데케미칼의 NCC(연산 110만t) 설비가 서서히 중단된다. 만약 석유화학 업황이 개선된 상황에서 사업 재편에 따라 NCC 가동을 먼저 줄였다면, 이 같은 실익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초기에 제시한 지원책보다 구조조정이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까지 버티는 기업에 주는 인센티브가 더 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먼저 최종안을 제출해 생산량을 줄인 기업들만 부담을 떠안고, 다른 기업들은 수혜를 누리게 돼 당초 목표로 했던 구조조정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구조 개편에 참여한 한 석유화학 기업 관계자는 "주요 NCC 기업이 먼저 구조 개편에 동참해야 다른 후발 주자들도 참여할 유인이 생길 것"이라며 "모든 석유화학 기업이 동일하게 구조 개편에 참여해 향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힘을 보탰으면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동 사태로 나프타 공급망 확보가 우선시되면서 구조 개편 논의가 다소 지연되고 있지만, 구조를 개편해야 하는 필요성이 줄어든 건 아니다"라며 "기업들과 최대한 긴밀히 협의하고 있으며, 먼저 최종안을 제출한 기업에 불이익이 없도록 지원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