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에 참여할 지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경쟁사인 한화오션에 공법과 신기술 등의 정보가 공개된 데다 군사기밀을 유출했다는 이유로 감점도 받아 입찰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였지만, 참여를 포기할 경우 후속 사업들을 따내는 일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방위산업계에 따르면 1차 공고에 참여하지 않았던 HD현대중공업은 최근 KDDX 상세 설계·선도함 건조 사업 참여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내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계약법상 지명 경쟁 입찰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한 곳이라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 유찰 후 재공고가 이뤄진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18일 사업 재공고를 냈다. 입찰 참가 등록은 28일, 제안서 제출은 29일 각각 마감된다.

HD현대중공업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의 조감도(왼쪽)과 한화오션의 KDDX 함정 모형. /양사 제공

KDDX 사업은 선체와 이지스 체계를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 사업이다. 총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톤(t)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한다. 2028~2030년 퇴역 시점에 이르는 노후 함정을 대체하는 것이 목표다.

통상 함정 사업은 개념 설계→기본 설계→상세 설계→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개념 설계는 지난 201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기본 설계는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각각 담당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달 진행된 1차 공고 당시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방사청이 기본 설계 자료를 공개하면서 경쟁사인 한화오션은 이를 토대로 자신들의 정보를 갖게 됐지만, HD현대중공업은 상대의 정보가 없어 전략을 수립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방사청은 1차 공고를 내기 전 두 회사에 입찰 제안서 작성을 위한 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제안 요청서에는 단순 설계도 외에도 향후 선도함 건조 시 적용할 노무비 단가, 공법, 기술 적용 계획 등이 포함됐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2020년 기본 설계를 진행하며 상세 설계까지 염두에 두고 작성한 자료가 많아 제안 요청서에 담긴 여러 내용이 영업 비밀에 속한다고 주장해 왔다. 함정 사업은 기본 설계를 담당한 업체가 상세 설계까지 맡았던 경우가 많아 더 많은 내용을 담았다는 게 HD현대중공업의 주장이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본 설계 과정에서 KDDX 뿐 아니라 기존 세종대왕함·정조대왕함·호위함 사업을 수행하며 축적한 건조 노하우와 기술 전략까지 반영을 했다"며 "경쟁사가 자료를 활용해 제안서를 작성할 가능성이 커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진수한 8200톤급 최첨단 이지스구축함(KDX-III Batch-II) 2번함인 '다산정약용함'. /HD현대중공업 제공

HD현대중공업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방사청을 상대로 KDDX 기본 설계 자료 공개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지난 8일 기각됐다. 재판부는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자료를 제공했다는 점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영업 비밀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HD현대중공업은 법원 판단에 불복해 항고한 상태다.

HD현대중공업이 보안 감점을 받은 점도 입찰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인 이유로 꼽힌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임직원 9명은 2013년 대우조선해양의 KDDX 개념설계도 등 등 해군 기밀 자료 12건을 몰래 촬영하는 등 불법으로 취득해 회사 내부망을 통해 공유했다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8명은 2022년에, 1명은 2023년에 유죄가 확정됐다.

당초 방사청은 두 판결을 한 사건으로 보고 1.8점 감점을 부과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내부 검토 결과 별개의 사안으로 보겠다며 올해 12월까지 1.2점의 감점을 추가 적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방사청은 이번 제안서 평가 과정에서 감점 적용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소수점으로 수주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1.2점 감점은 당락을 가를 수 있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내부에서는 사실상 KDDX 사업 수주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며, 입찰에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만약 HD현대중공업이 재공고에도 입찰을 포기한다면 방사청은 한화오션과 수의 계약을 해야 한다.

지난 1일 경남 창원 진해구 진해 군항에서 열린 '2026 이순신방위산업전(YIDEX 2026)'에서 참석자들이 한화오션 부스를 찾아 차세대구축함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다만 업계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후속 사업을 따내기 위해서라도 결국 입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일감이 줄어들면 숙련공들이 경쟁사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며 "이는 핵심 기술 유출과 경쟁력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HD현대중공업이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방사청은 올해 안에 계약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목표 시점인 2032년까지 해군에 배를 인도하기 위해 당초 수립한 계획이 더 늦춰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입찰 제안서 마감 시점까지 충분히 고민해 최선의 결과를 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