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전자 노사가 합의한 성과급 지급안이 향후 산업계에 거대한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고용이 안정된 수만 명의 직원이 개인 실적과 관계 없이, 투자 등에 대한 경영상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수억 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받았던 전례가 없었다며, 다른 기업들에서도 이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경우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뉴스1

2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20일 사업 성과의 10%대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는 내용의 보상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DS) 부문 임직원은 올해 최대 6억원(세전, 연봉 1억원 기준) 안팎에 이르는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 DS 부문의 국내 임직원 수는 7만8064명이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삼성전자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5800만원이었다.

◇ 年 5억원 이상 소득 올린 임원 수, 전체 상장사 기준 0.1%대 불과

국내 산업계에서 생산 직군 등을 포함한 다수의 직원이 이 같은 거액의 성과급을 받은 사례는 없었다. 전체 상장기업에서 수억 원의 보상을 받는 사람들의 비중은 최상위급의 일부 임원들로 한정돼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 전체 임원 가운데 연간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은 임원의 비중은 0.15%를 간신히 웃돌았다. 코스닥시장 상장사를 놓고 보면 5억원 이상을 받은 임원 비중은 0.1%에도 미치지 못했다.

보수 5억원 이상을 받는 임원을 둔 기업의 비중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0.5%, 코스닥시장 상장사는 0.2%대에 그쳤다.

임원들의 급여·성과급 규모가 직원들에 비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사 대상을 전체 임직원으로 확대할 경우 국내 기업에서 연간 5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 사람의 비중은 더욱 낮을 수 밖에 없다.

◇ 계약직인 임원은 책임도 지는데… "리스크 없이 혜택만"

특히 거액의 급여와 성과급을 받는 임원의 경우 근속년수가 짧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 정규직원과 달리 임원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전환돼 재임 기간 실적에 따라 자리를 떠나거나 급여·성과급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

증권사 등 일부 업종에서는 실적에 따라 임원이 아닌 직원들이 거액의 성과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개인별로 영업 등에서 높은 실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역시 고용과 보상 등에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처지다. 이런 일자리의 경우 실적에 따른 성과급 비중이 큰 만큼 기본급은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재계 한 관계자는 "수억 원에 이르는 큰 돈을 받는 임원들이나 일부 스타급 직원들은 매년 개인별 실적에 따라 신분이 흔들리는 위험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이번 삼성전자 DS 부문의 경우 고용이 보장된 수만 명의 직원들이 수억 원의 성과급을 챙기게 됐고, SK하이닉스 역시 비슷한 '돈잔치'를 벌이게 됐다"며 "한국 경제사(史)에는 이 같은 전례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더구나 삼성전자 일반 직원들은 투자 실패 등 회사 경영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회사 사정이 나빠져도 약정된 기본 급여가 그대로 지급된다는 의미다.

◇ 허탈·박탈감 호소 늘어… 재계 전반으로 번질까 '우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번 성과급 합의가 '뉴 노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다른 기업들 역시 노조를 중심으로 직원들이 고용 보장과 회사 실적에 연동해 일정 비율을 고정한 성과급을 모두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성과급 합의 소식이 전해진 후 직장인 사이에서는 허탈함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심지어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DS 부문을 제외한 조직 직원들이 거액의 성과급 잔치에서 소외돼 이번 합의안에 반발하는 상황이다.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경우 직원들의 보상 수준은 600만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노사 임금협상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가 시작되는 22일 오후 경기 수원시 삼성전자 정문 앞에서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직원들이 주축이 된 삼성전자 노동조합 동행(동행노조) 집행부가 잠정합의안 및 찬반투표 참여 범위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졸속적이고 부실한 잠정합의안이 나왔다"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NSEU) 수원지부와 동행노조는 22일 삼성전자 수원캠퍼스 정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합의안은 반도체 메모리사업부의 성과급 교섭으로 변질된 졸속·부실 합의였다"며 전면 부결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다른 대기업 노조들도 삼성전자와 같이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고정해 지급해 달라는 요구를 쏟아내는 중이다. 이들이 기업에서도 삼성전자 사례를 들어 투쟁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 협상을 앞두고 사측에 지난해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는 내용 등을 담은 요구안을 사측에 보낸 바 있다. HD현대중공업 통합 노조도 영업이익의 30% 이상을 성과로 배분하라고 요구하면서,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기준을 단체협약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두산에너빌리티와 삼성바이오로직스, LG유플러스 등도 잇따라 실적과 연동한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투자는 많은 대외적 변수와 위험을 반영해 이뤄진다"며 "전년도 실적이 개선돼도 이듬해에는 오히려 긴축과 비용 절감에 나서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매년 실적의 일정 비율을 보상으로 지급할 경우 정작 필요할 때 자금 부족에 시달려 기업이 위기에 놓일 수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